참새스텝을 배워볼까요
요즘 제가 자주 가는 길에는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지만 막상 오르다 보면 꽤나 경사가 가파른 곳입니다. 오르다 보면 숨이 막히고 종아리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 여름에 그 길을 지날 때는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땀을 다 쏟아내 옷이 젖기도 하지요.
이 집에 이사 온 게 벌써 5-6년이 되었고, 그 길을 오른 건 그만큼 여러 번이었습니다. 매번 이 가파른 길을 빨리 지나가고 싶어서 큰 보폭으로 빨리빨리 올라가려 했지요. 어느 날은 올라가다가 중간에 허리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르던 날도 있던 거 같네요.
최근에는 그 길을 더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작고 귀여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출근을 하려면 그 언덕길을 올라가야만 합니다. 매일 오르는 길에 숨이 헐떡거리고는 했습니다. 단숨에 빠르게 올라가고자 해서인지 종아리에 힘이 많이 갔었나 봅니다. 며칠을 그렇게 그 길을 다니고 나니 저녁쯤엔 항상 종아리가 뭉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심각한 운동부족이기도 하지요…)
어느 날엔가 조금 일찍 일어나 여유를 부리며 아침 커피를 내려마셨고, 평소보다 10분 일찍 느긋하게 출근을 해보았습니다. 그날은 천천히 길을 올라가고 있었지요. 평소면 급하게 가느라 보폭을 크게 크게 걸었는데 이번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좁은 보폭으로 올라갔습니다. 거의 걷고 있는 건지 모를 수준으로 아주 조금씩 올라갔습니다.
참새의 보폭만큼 아주 조금조금 걸어가니 종아리가 당기지도, 숨이 차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촘촘하게 걸어가다 보니 속도는 느렸지만 어느새 그 언덕을 다 올랐어요.
지금 제가 가는 길도 그런 거 같네요. 비록 커리어를 멈추고 천천히 움직이도 않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밟아가고 있지만, 뒤를 돌아보면 결국 언덕을 다 넘어갔겠지요.
얼마 전, 전지적 참견시점에 나온 최강희 배우님 편을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쩌면 저랑 동병상련이 느껴졌는지도요. 배우로서 많은 커리어를 쌓았지만, 잠시 뒤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에너지를 쌓고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저에게 언제 다시 일을 제대로 시작할 건지,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묻고는 합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렇지만 언젠간 <내 일>을 찾을 거고 그때까진 내가 잘하는 일,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차근차근히 에너지를 모아보려고 하지요.
종종걸음으로 밟아가는 오늘이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촘촘한 걸음들이 오히려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설이었네요. 조금 놓쳤지만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셔야 합니다. 무조건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