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되고 싶었다.

발가락에서 발등으로,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by 지수빈


그 자리에 거미가 죽어있다

거미줄로 엉기어서

발가락에서 발등으로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서로 엉기어서

가만 보고 있으려니

거미 한 마리가 죽은 게 아닌 것도 같고

거미 두 마리가 죽은 게 아닌 것도 같고

머리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발가락으로 굽어져서

그 거미의 손가락인지

저 거미의 손가락인지


엉기고 얽히고 뒤얽혀서

한 번쯤 너를 안아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여덟 개의 다리로 너를 옭아매고

겹겹이 쌓은 거미줄로 너를 속박하는 것이

사랑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어차피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뿐이라면

나는 거미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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