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활동을 하는 건 철저히 본인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학생회장'이라고 적힌 명찰을 목에 매고 있는 빈아.)
눈앞에 닥쳐오는 것들에 나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는 것.
(빈아의 뒷모습.)
다수의 생각을 대표하여 전달하나 소수의 의견이라고 가볍게 무시하지도 않는 것.
(서서히 주저 않는 빈아의 뒷모습.)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쪼그려 앉아 땅을 보는 빈아의 옆모습.)
열심히 일하는 걸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것.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빈아.)
나의 움직임이 좋은 변화를 일으킬지 안 좋은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것.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빈아의 앞모습.)
대표자인 만큼 언행에 신중할 것.
(완전히 서서 주먹을 쥐고 있는 빈아. 손 클로즈업.)
학우들과 교수, 교직원들로부터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른 손으로 가슴에서 뜨겁게 타고 있는 마음을 꺼내는 빈아. 일부가 없어져 있는 마음.)
그 감정 소모 역시 온전히 책임자의 몫임을 알고 감내할 것.
(마음의 조각을 새로 붙여 모양을 다듬는 빈아.)
내가 걸어온 학생회의 역사는 '당연함'의 연속이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해야 하고 해 내야 하는, 즉 모든 일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당연함. 그 당위성이 나의 원동력이었다.
학생회를 하게 되면 그 나이대에 경험하지 않아도 될 시련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책임감이 강할수록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더욱몰입하게 되어 나아갈 힘을 주어야 할 당위성이 오히려 족쇄로 변질되기도 한다. 단체를 위한 정의가 결국 스스로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학생회를 하면서 의견을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은 철저히 배제한 채 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의견이 정리되어도 항상 소수의 불만이 뒤따랐다. 그 문의에 하나씩 답을 해주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설득하기 위해 타당한 근거들을 수집해야 했고, 증거를 남기기 위해 텍스트로 최대한 자세하게 정리해서 공지하는 게 일상이었다. 최선의 방안을 찾았음에도 작은 의문도 남지 않게단체의 의견을 그 단체에게 역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 잘 정리된 문서를 공유해도그 모든 내용을 읽고 확인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였다. 학생회가 공지를 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양치기 소년이 된 것 마냥, 정말 중요하게 알려져야 할 사실들이 때때로 묻히곤 했다.
나는 나를 포함한 학생회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뽑힌 자들 만큼 뽑은 자들 역시 책임이 있다고생각했다. 우리에게 건강한 피드백을 전해준 몇몇의 사람들 덕에 우리는 발전할 수 있었다. 같은 동기이고 선후배이기에 직접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할 거라 생각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익명의 설문조사를 계속 진행했지만 그마저도 과반수의 참여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기에 따로 용기 내어 말해 준 학우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대단해 보였던 선배 학생회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들 중 시대와 세대에 맞게 속아낼 것들을 찾아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었다. 악습을 답습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하는 건 없다고 인지하고 늘 검열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이 점에서 여전히 부족했던 것 같다. 분명 우리가 기획한 행사의 요소들이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했을 것이다. 찝찝한 것들을 걷어내어 모두에게 떳떳하고 싶었으나 다 해결하지 못해 후배에게 과제로 물려줬다.
나는 학생회를통해 이 모든 과정에서 겪는 각종 소모 역시 결국 선택한 자들이 몫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단단한 철판과 더불어 철판 뒤에서 타고 있는 스스로도 외면하지 않고 살펴주는 것, 그래서 내외부를 다 보살피는 것이야 말로 학생회가 감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