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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Nov 17. 2023

졌지만 잘 싸웠다 1

5. 대학 생활 _ (4-1) 미대에 내민 도전장/경이로움/이만하면 됐다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1/10 업로드


5-(4-1-1) 졌지만 잘 싸웠다 _ 미대에 내민 도전장


2학년이 되고, 복수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빈아가 학교 홈페이지에서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있다.)


나는 패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미술 영재 교육, 학교 미술 특별 활동 등의 좋은 기억을 이어가고자 미대 공예과의 섬유 전공을 선택했다.

(빈아가 미대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치열한 입시 미술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강의실 문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빈아.)


내 걱정이 무색할 만큼 배움의 기쁨이 넘쳐났다.

(강의를 듣는 빈아. 배움의 기쁨에 미소 짓는다.)


특히 여러 소재들을 가지고 염색을 하거나 열과 약품을 통해 실험해 보며 응용, 활용 방법을 익힐 수 있었는데,

(섬유를 염색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빈아.)


과학 시간이라고 착각할 만큼 탐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완성된 결과물을 펼쳐보는 빈아.)


3학년 때 이론 수업을 추가로 들으며 주전공 수업 때 배운 것들을 더 탄탄히 다졌는데,

(다들 동대문원단시장에서 모아 온 스와치들을 꺼낸다.)


섬유 소재 이론 수업에서 각 소재를 하나씩 직접 만져보며 혼용율에 따른 차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스와치들을 만져보는 빈아.)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1/16 업로드


5-(4-1-2) 졌지만 잘 싸웠다 _ 경이로움


수업이 어렵고 힘들어도 이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실습을 하고 있는 빈아를 살피는 교수님.)


인기 있는 교수님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직접 배워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교수님이 강의하는 모습.)


교수님은 딱딱한 이론을 부드럽게 만드는 실력을 갖추신 분이었다.

(교수님 얼굴 클로즈업.)


중간중간 영상 자료를 통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특히 타전공생이라고 나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교수님과 빈아가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미대 건물을 뿌듯하게 나오는 빈아.)


소재 이론 수업 직전에 같은 교수님의 니트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엔 의상이 아닌 작품을 위한 직조를 해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레기도 했고

(니트를 직조하는 빈아.)


내가 정했던 '경이로움'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 스스로 결과물에 큰 기대를 걸었다.

(경이로움이라고 써진 PPT 화면이 띄워져 있고, 빈아가 발표하고 있다.)


여행에 대한 갈망을 미디어 파사드와 같은 기술을 통해 해결하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뜻을 담은 작품을 기획했고,

(미디어 파사드로 표현된 오로라 그림. 픽셀로 쪼개져 있다.)


대표적인 경이로운 자연경관인 오로라, 에베레스트, 동굴, 심해를 니트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그 경이로운 광경을 재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실로 시도해 보며 나름 최선을 다했다.

(니트로 오로라를 표현하는 빈아.)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1/17 업로드


5-(4-1-3) 졌지만 잘 싸웠다 _ 이만하면 됐다


그런데 기말이 가까워지면서 학우들이 만든 것들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고

(강의실로 들어가는 빈아. 자리로 향한다.)


실타래로 시작했던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 하나의 예술 작품들로 변신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걸 본 순간, 나는 크게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작품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정말 엄청난 실력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그때 체감했고, 이들 사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란 정말 불가능에 가깝겠구나, 인정해야 했다.

(교실을 둘러보는 빈아. 학생들이 엄청난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심지어 복수 전공생 위치에서 말이다.

(그 사이에서 작아진 빈아. 학생들의 그림자가 빈아를 덮는다.)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그렇게 의욕이 없기는 처음이었다. 학점 욕심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빈아. 시무룩하다.)


그날, 야작을 하고 학교 언덕을 내려가는데 과 동기에게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울려 핸드폰을 바라보는 빈아.)


잠시 내 투정을 받아주던 친구가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해 줬는데

(통화를 하는 빈아의 뒷모습. 핸드폰으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 말풍선에 '힘들지...'라고 적혀 있다.)


거기에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차마 하지 못하고 미뤘던 결정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눈에 눈물이 고인 빈아.)


이만하면 되었다고. 나는 결코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만하길 선택한 것이었다.

(빈아의 뒤로 미대 건물이 보인다.)


 대학교 3학년은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생활은 물론 학생회장에 연합 동아리 집행부로도 활동했고, 학과 한복 동아리에, 복수전공까지 했으니 말이다. 몸이 10개여도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그때를 기분 좋게 기억하고 있는 건 모두 내 자의로 선택한 것들이었고, 다 재밌었다. 특히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다 좋았다. 그 사람들과 함께 많은 것들을 도전하고 실패해 보며 나는 정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단체의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보다 컸던 나의 배포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직접 배울 수 있었고, 내가 바쁜 걸 즐긴다는 것과 여러 활동들을 동시에 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창 시절, 그만한 깨달음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냐 하면, 당연히 있었다. 종종 그랬다. 내 선택이 되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었을 때 조금 힘든 것도 엄청난 크기로 느껴졌다. 특히 복수전공으로 미대를 선택한 것은 무모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2학년 때 들었던 첫 수업은 섬유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겁먹은 것에 비해 수업이 기다려질 정도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인에 활용해 볼 수 있는 것들, 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매 시간마다 새롭게 배우며, 패션에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는 복수전공 선택 목적을 달성했다. 특히 3학년 때 선택한 수업에서 그 질에 감탄하게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무조건 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인기 교수님의 수업 두 개를 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기 교수님 수업을 타 전공생이 수강 신청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그걸 성공했을뿐더러 실제 수업에서 교수님은 타 전공생이라고 나를 소외시킨 적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으셔도 내가 잘 이해하고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초반까진 참 좋았다.


 문제는 기말이 다가오면서부터였는데, 이론 수업은 내가 공부하고 익힌 만큼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실습수업은 그야말로 어려운 난제에 부딪힌,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미대란 이런 곳이구나, 그 치열한 입시 미술을 견디고 온 사람들은 다르구나, 여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미치도록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내 실력과 응용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린 것을 실제로 표현해 내는 게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그때 대학 입학 이후로 처음으로 크게 좌절했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작품들 사이에서 악바리로 버티는 내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학교에서 야작(야간작업)을 마치고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과 동기에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친구가 건넨 '힘들지...'라는 한 마디에 펑 터지는 나를 보고 결심했다. 복수전공을 포기하자고.


 그래, 다 한다고 나도 해야 하는 건 아니야. 포기해도 괜찮아. 나는 해내지 못한 게 아니라 그만하길 선택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 졌지만 잘 싸웠어.


 그렇다고 선택을 후회하느냐, 그렇진 않다. 해봐서 미련이 없을뿐더러 그 짧은 시간에 얻어간 게 정말 많았다. 취미로 하는 미술과 전공 미술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았고, 나는 재밌게, 내가 하고픈 대로 하는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직접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교수님과 학우들 사이에서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실력을 리스펙 하며 나도 그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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