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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Nov 09. 2023

졌지만 잘 싸웠다 0

5. 대학 생활 _ (4-0) 미술 영재 교육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1/09 업로드


5-(4-0) 졌지만 잘 싸웠다 _ 미술 영재 교육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미술 영재 교육을 받게 되었다.

(미술 영재 교육 개원식날, 빈아와 친구들이 강당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모인 미술쟁이들과 함께 나는 약 1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들으며 미술에 대한 흥미를 키울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빈아.)


담당 선생님은 물론 여러 곳에서 초청된 선생님들과 함께 예술에 대해 폭넓게 배우고 시도해 볼 수 있었는데, 그때 캐리커처부터 전사 프린팅, 수채화, 추상화, 벽화, 크로키, 칠보 공예, 도자기 페인팅, 입체 조형, 패션 일러스트, 의상 제작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빈아의 대표 작품 세 가지. 전사 프린팅 티셔츠, 종이로 만든 의상, 추상화.)


모든 수업은 채점이 아닌 긍정적인 피드백들로 가득했고, 우린 그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자라나는 우리들을 새싹으로 표현. 위에서 물과 햇빛이 내려온다.)


지금도 나는 그때 들었던 칭찬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새싹 빈아가 햇빛을 바라보고 있다. 햇빛에 선생님의 미소가 비친다.)


표현하길 사랑하는,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빈아와 친구들. 서로의 얼굴에 물감이 묻어 있는 걸 보고 웃고 있다.)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포트폴리오에 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들과 피드백, 작품 사진들을 잘 정리해서 넣었는데

(파일에 종이를 끼우는 빈아.)


그 포트폴리오 덕분에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 최우수상 상장을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빈아 정면.)


그렇게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더 커진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미대를 선택하게 되었다.

(미술영재교육원을 나와 미대 복수전공으로 향하는 빈아.)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보다 더 이상 열심히 할 수는 없다고 느낄 때, 그리고 작품을 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릴 때, 그럴 때 우리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을 밟게 된다. 고등학생때 미술 영재 교육을 받으면서 부족한 실력 때문에 외면했던 것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고, 패션디자이너라는 내 목표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소중히 쌓은 영재 활동의 경험들은 활기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될 것이다. 매 순간 두려움과 싸우며 나 자신을 이겨내려고 애썼던 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한 미술영재교육 지정 학교의 종합 작품집에는 학생 한 명당 한 페이지씩 소감과 함께 작품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 내가 적은 소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약 1년 간 다녔던 그곳에서 나는 정말 미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그곳은 점수를 매겨 줄을 세우거나 지적과 비난이 오간 적이 없었다. 정말 건설적이고 양질인 피드백만 오갔고, 서로의 작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썼던 포트폴리오를 다시 쭉 봤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정말 정체성이 뚜렷한, 색다른 작품들을 툭툭 완성시키는 멋진 아이였다.


 '꽃 봉오리 하나'라는 제목의 포트폴리오에는 그곳에서 배운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데,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꼼꼼히 적어놨고, 내가 만든 작품과 그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들어가 있었다. 덕분에 수료식날 포트폴리오 최우수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 중 기억에 남는 것 딱 하나를 꼽으라 하면 절대 꼽지 못할 만큼 지금 봐도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든다. 그래도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추상화 수업 때 그렸던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추상 표현 수업의 시작은 '음악을 그림으로 시각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음악을 듣고 그린 두 작품이 화면에 띄워졌는데, 정말 그림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은 따뜻한 추상 표현의 선구자 칸딘스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시면서 음악을 잘했던 그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셨다. 그 실력에 뛰어난 색채 감각까지 갖춘 그는 세상의 질타를 받는 와중에도 그 두 가지를 멋지게 조합시켜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추상'은 사실적인 묘사를 완전히 배제한 것을 말하는데, 보이지 않는 심상의 세계를 시각화하고 다양한 재료와 기법의 실험을 과감히 시도하는 것이다. 칸딘스키는 그 과감함을 갖춘 섬세한 화가였다.


 실습 시간이 되고, 나는 한국사 수업 시간에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되, 그 안에 깊은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작품 이름은 '흩어진 태극기 조각'. 그 나이 때 느낀 우리나라는 정말 아픔이 많은 나라였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침략과 갈등을 이겨내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나라의 국기가 여러 색깔과 조각들로 그 형체를 잃어가는 모습을 통해 그 힘들었던 역사 속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그리고 '조각'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확장하여, 언제든지 다시 합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다.


 태극기에 들어간 색감을 활용하여 배경을 칠하고 건곤감리의 조각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가운데 검은색 원을 그려 텅 비어버린 공간을 나타냈고, 그 옆에 흰색 원을 작게 그려 흩어져 사라져 버린 태극기의 본래의 자리를 표현했다. 빨간 물감을 흩뿌려 핏자국을 살짝 넣고, 조각들이 꽃잎처럼 흩날리게 연출했다. 그렇게 붓질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였더니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게 있었다. 선생님은 내 작품이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하셨다. 많은 붓터치를 통해 배경의 깊이를 더한 점이 좋았고, 여러 가지 색이 섞인 태극기 조각과 그 조각들이 있었던 자리에 흰색 원이 깔끔하게 들어가면서 완성도를 높였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때의 기억이 좋아서일까, 나는 대학교 때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업이 있을 때마다 정말 재밌게 임할 수 있었고,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시기에 고민 없이 미대를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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