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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un 20. 2022

분명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아도

<안경>

 많은 자동카메라에는 AutoFocus라는 기능이 있다. 말 그대로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어 주는 기능으로, 원하는 곳에 렌즈를 들이대면 따릭 하고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어 주기 때문에, 내가 찍는 사진들은 보통 AF 모드로 설정해 놓고 찍은 것들이다. 사람이나 거리 사진을 찍을 때에는 아무리 AF 모드로 설정해 놓아도 결과물을 확인해 보면 초점이 완전히 나가거나 엉뚱한 곳에 잡힐 때가 있다. 그런 사진들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사진들일 거다. 그렇지만 분위기나 은근한 빛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데에는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열 살 무렵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콧등 위에 동그란 안경 자국이 남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었다.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안경을 끼고 다니는 친구가 부럽고 멋져 보여서 어지럼을 이겨내며 빌려 써 보기도 하고, 괜히 텔레비전 가까이 앉아 얼굴을 바짝 들이대다 엄마에게 등짝도 맞고 그랬다. 얼마 지나지 않고서부터는 안경 없이는 칠판의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난시가 심한 탓에 지나치는 얼굴들을 알아보지 못해 의도치 않은 서운한 마음들을 빚기도 하고, 반대로 모르는 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민망하기도 했다. 수업이 있어도 안경이 없이는 안 가느니만 못 한 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안경을 쓴 모습보다 안경을 쓰지 않은 모습이 더 어색한 얼굴로 꽤 오래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눈 나쁜 친구들은 하나둘 라식이나 라섹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수술을 하고 굳이 안경이나 렌즈를 찾아 끼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편안한지, 두 눈에 광명을 찾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더 이상 못생겨지는 두꺼운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지만 눈이 나쁘면 [안경을 벗고 흐리게 세상을 본다/ 안경을 쓰고 선명하게 세상을 본다] 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눈이 좋으면 무조건 선명하게만 봐야 하니까, 오히려 선택지가 줄어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두리뭉실한 것들을 좋아하는 나는 원래 힘주고 바라보아야 하는 일이 없으면 굳이 안경을 찾아 쓰지 않는다. 모든 게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초점 없이 흐릿한 눈으로 뭉쳐 있는 나무나 반짝거리는 파도의 움직임, 어지럽게 달리는 도심 속의 자동차들을 바라볼 때, 동그랗게 빛나는 가로등의 빛 번짐을 키웠다 줄였다 하며 깜빡이는 눈꺼풀, 분명하지 않고 명확하지 않아도 충분에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들. 정확하게 짚어내며 살아가야 하는 하루하루에 그렇게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과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퍽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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