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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n 20. 2022

안경을 쓴 어린이에서 물안경을 쓴 어른으로

<안경>

처음 나의 시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게 교정된 렌즈로 안경을 맞춰 썼던 날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어둑한 저녁, 부모님과 함께 은색 테의 안경을 맞춰 쓰고 바깥으로 나왔더니 밤을 밝히는 가로등의 빛은 번지지 않았고 간판의 글씨들은 모두 또렷하게 보였다. 마치 뿌옇게 김 서린 눈동자를 닦아낸 것과 같았어서 나는 나 빼고 모두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던 거냐며 퍽 억울해했다. 이제 뒷자리에서도 칠판의 글씨를 알아보기 위해 인상을 찡그리지 않아도 되었고, 소파에 멀찍이 누워서 TV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안경을 쓴 어린이가 되었다.


그 후 1년에 한 번씩, 나는 새로운 안경을 맞췄다. 렌즈만 바꾸기도 하고 안경테를 유행에 맞춰 바꿔 쓰기도 했다. 키가 갑작스레 많이 자라면 눈도 같이 나빠진다고 하는 안경점의 직원 말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다. 눈은 꾸준히 나빠졌고 나는 뿔테 안경부터 반테, 무테안경까지 거의 모든 안경 종류를 섭렵하고 나서야 안경 쓰기를 그만뒀다. 콘택트 렌즈의 세계로 입문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 뿌연 유리 벽 뒤에 살다가 갑자기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마주한 기억을 나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 갈 때마다 반복해 겪고 있다. 아무리 깨끗한 물속에서 눈을 떠봐도, 순식간에 엄청난 근시가 된 것처럼 모든 사물이 뿌옇게 보여 오직 감만으로 손을 뻗어 물건을 집거나 헤엄을 쳐본 적이 있는지? 일렁이고 울렁이는 수면의 뒤, 그러니까 물속의 동작들과 푸른빛의 타일들을 나의 눈만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물안경이 필요하다.


지금껏 별생각 없이 집에 이미 있던 까만색 물안경을 가지고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오늘은 문득 물속에서의 나의 시야가 더 깨끗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내수영장에서라면 굳이 까만색 물안경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말하자면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던 셈이라, 급히 집으로 돌아와 새 물안경을 주문했다. 물안경의 세계는 내 생각보다 다양했고, 여러 안경을 착용해 봤던 물밖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물안경 두 개를 결제했다. 실내에서 쓸 투명 하나, 실외에서 사용할 미러 렌즈 하나. 아, 나는 안경을 쓴 어린이에서 물안경을 쓴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이번 주말, 바다로 캠핑을 다녀왔다. 6월의 바다라 추워서 못 들어갈 줄 알았더니 마침 더워진 날씨 덕에 바다에 풍덩 뛰어들 수 있었다. 새파란 동해의 바다였다. 초록빛의 물결 뒤로 바닷속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물안경이 없어 물속에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서나 용기 내어 눈을 떠보지, 소금물 속에서 눈을 뜬다면 아마 호되게 눈물바다가 되었을 테다. 바닷물은 맑고 깨끗하고 심지어 수면에 비친 빛들이 바닥의 모래까지 굴절되어 반짝이는데, 물안경 생각이 절실했다. 왜 물속에서 간편하게 눈을 보호해 주는 콘택트 렌즈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주말의 아쉬움에 오늘 물안경을 두 개나 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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