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Jun 06. 2022

편지라는 단어에서는 잉크 냄새가 난다.

<편지>

편지라는 단어에서는 종이와 잉크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카카오톡으로 길게 보내는 메시지, 이메일로 주고받는 글을 모두 편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곱게 편 편지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글만이 편지로 다가온다.


편지는 로맨틱하다. 하고 싶은 말을 입으로 내뱉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적는 게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랑한다는 4글자를 말하면 발화되는 그 즉시 휘발되지만, 그 글자를 편지지에 옮겨 적을 때면 한 글자 한 글자 되새기게 된다. 한 번 말해도 충분한 것을 두 번, 혹은 그 이상 입안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굴리다 보면 마음은 켜켜이 쌓이게 되고, 쌓인 마음은 우리가 쓰는 글씨에 스며든다. 눌러 담은 마음은 날아가지 않고 그렇게 살아있는 활자가 된다. 


꼭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특별한 날, 생일, 기념일 혹은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편지지를 펼친다. 마음을 조금 더 진심 어린 방법으로 전달하고 싶을 때는 말보다 편지가 좋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건 싫고, 말로 하기엔 어딘가 부끄럽기도 하니까, 그 모든 걸 편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마음대로 썼다 지웠다 할 수도 없고 한정된 공간 안에 한정된 말을 해야 하니 문장을 적을 때 신중을 기하게 된다. 뒤죽박죽이던 마음은 잘 정리되어, 편지지 안엔 정돈된 예쁜 형태의 마음이 담긴다.


편지는 때론 무겁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거다. 나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에게 친근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곧잘 어울렸지만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친해지는 게,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 한 명이 편지를 보냈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작은 카드에 적혀 있는 그 활자를 보자마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기분이 좋았다거나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왜냐면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친해진다는 건 스타트라인을 끊는 것처럼 시작되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편지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결국 그 편지를 보낸 친구와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그 편지가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사실 친구에겐 지나가듯 했던 말일 수도 있을 거다. 우리가 친해지지 못했던 건 어쩌면 편지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내 탓일지도. 자연스레 먼저 다가가서 말 한마디 더 걸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난 그러지 못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괜한 상처를 준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편지는 이상했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지나가듯 말했다면 나는 오히려 그 친구와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꾹꾹 눌러 담은 그 문장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나는 지나치게 많은 마음을 상상했다. 아마 내가 편지를 쓸 때 그렇게 썼기 때문이겠지.


편지는 살아있다. 똑같은 폰트로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메시지들과는 다르다. 작은 종이에 나라는 사람이 담긴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필체로 쓴 나의 마음. 조금은 특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는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