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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n 06. 2022

이제는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편지>

안녕.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거나 아니면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간만인가 봐.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지 너무 긴 시간이 흘러버린 탓에 나는 아마 희미하고 뿌연 이미지처럼 기억이 되고 있겠지. 연락이 닿지 않은지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나는 가끔씩 너를 생각해. 저녁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을 때 가장 많이 생각 나. 오늘은 그렇게 멀어져 버린 사람들을 너라고 불러보려고 해.




아직도 나는 같은 곳에 살아. 아주 더웠던 여름날 우리가 잠깐 쉬어갔던 정자도 그대로고, 추운 날 뽀얗게 눈이 쌓였던 한강 산책길도 그대로야.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나는 혼자 하교하는 것이 더 편했는데도, 너희 반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발을 차며 기다렸어. 우리 반이 일찍 끝날 때는 네가 기다려주기도 했지. 10분도 안 되는 시간을 같이 걸으려고 그렇게 기다렸다는 게 지금은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해.


나는 아마 그때 너에게 서운했던 점들을 이야기했어야 하나 봐. 나는 너의 어떤 점들이 마음에 자꾸 걸렸어. 네 마음에 걸렸던 나의 모습도 있었겠지.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엔 더욱더 내 속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때야말로 편지 같은 것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해. 전하기만 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을텐데.




요즘 들어 나는 교대 근처에 가끔 가게 됐어. 운동장을 한 바퀴 걸었는데 여기서 농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교대 사람일까 아닐까 실눈을 뜨고 의심을 하게 되더라고. 우리는 교대 학생들이 아니었잖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너의 필체가 기억이 나. 자습실에서 주고받은 쪽지 때문이었나 봐.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을까? 그러다 결국엔 가방을 들쳐 메고 카페로 도망을 가서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네가 정말 좋은 수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 아마 어딘가에서 친절한 웃음을 짓고 따뜻하게 동물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친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 순간에 멀어지게 되었을까 나는 아직 잘 이해가 안 가. 나는 네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정말 좋았고, 세심하고 친절한 모습에 금방 마음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잔뜩 했어. 그런데 아마 나는 너의 이야기를 못 들었거나, 아니면 그저 흘려듣고 말았나 봐. 네가 무엇이 불편하고 힘들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거든. 우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널 잃지 않겠다고 생각해.




지금에 와서 그리움에 손을 뻗어보아도 닿지 않더라고.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다르게 겪어서, 서로에게 공감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느껴. 마음은 여전한데, 이렇게 멀어지는 친구들이 생기는 것이 좀 슬퍼. 언젠가 만나서 또 웃고 떠들길 바라지만, 그럴 수 있는 확률은 별로 안 되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나 혼자 편지를 적으면서 어디에선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거야.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겠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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