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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un 06. 2022

소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

<편지>

 고래는 물속에서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물은 공기보다 소리를 더 멀리, 넓게 전달할 수 있으니 물은 꽤나 효과적인 전달 매체다. 물은 진동까지도 전달할 수 있으니 어쩌면 고래들은 소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도,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미묘하고 복잡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인지라 말로는 앞뒤를 재어 이야기하지 못할 것만 같은 때. 그럴 때 나는 편지를 쓴다. 손으로 눌러쓸 때도, 카카오톡으로 장문의 편지를 남길 때도, 넘치는 마음을 이메일 속 글자에 담아 보낼 때도 있다. 편지 속에서 나는 말을 더듬거리거나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다. 말을 할 때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미안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어쩐지 쉬워진다. 내 손을 떠나는 문장들이기도 하거니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 서로의 마음 어느 부분에서 오해가 생겼는지 짚어내는 것도 쉽다.


 쓰고 싶은 편지는 종알종알 한도 없이  내려갈  있지만, 한편으하고 싶은 말이 길지 않은데 써야 하는 편지는 고역이다. 갑작스럽게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롤링 페이퍼나 만나기 직전에 쓰는 생일 편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압축해서 담아내   있을  같은데도,  짤막한 다정함이 나에게는  어렵다. 거침없는 손길로 편지를  쓰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중에서는 산문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서간집 읽는 것이 제일 좋다. 김환기와 김향안, 빈센트와 테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들. 남의 편지를 이렇게 훔쳐봐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편지 안에서만 느낄  있는 종류의 위트, 작고 아름다운 그림, 다정함과 사랑에 마음이 간지럽고 부러운 마음이 든다.


 최근 2000년대에 썼던 이메일을 발견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처음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가족들과 종종 메일을 주고받곤 했었다. 한집에 살면서 몇 글자의 말을 그렇게 전달하려 했었다는 게 귀엽고 웃기면서도 어떤 마음으로 메일을 적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남의 편지 읽는 기분으로 쭉 읽어 보았다. 주로 짜증을 내고 혼이 났거나, 동생과 다투었거나, 속상했을 때 주고받았던 메일들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어려운 말을 잘 못 꺼내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 연희동에 가면 [글월]이라는 작은 편지 가게가 있다. 나는 거기서 서간집을 하나 사고, 모르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모르는 이로부터 편지를 하나 받았다. 내가 뭐라고 편지를 써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받았던 편지에 피식 웃을 수 있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 넓은 세상에 모르는 이의 무심한 문장이 고마울 수도 있다니. 내가 보낸 편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갔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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