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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May 23. 2022

잘 쉬는 것도 능력이다

<휴식>

 잠들기 전 휴대폰을 보다 오랜만에 웹툰 페이지를 들어갔다. 밀렸던 작품들을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벌써 새벽 한 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무슨 대수랴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당장 아무리 맑고 또렷한 정신으로 밤을 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지금 잠들지 못하면 내일의 내 꼬락서니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유튜브에서 빗소리를 검색해 틀고, 화면을 끄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내일의 일이 있는 오늘은 잘 쉬는 것도 능력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학이라는 게 있었다. 한 학기를 열심히 달리고 합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릴 수 있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시간에 밀린 만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해가 중천이 될 때까지 잠을 잤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고, 휴대폰만 만지다가 해가 지고 달이 지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다 보면 또다시 한 학기를 살아낼 힘이 생겼던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몇 년을 보내기도 했고.


 그렇지만 이제는 쉴 때를 스스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도 나에게 방학을 주지 않으므로, 일의 완급 조절을 스스로가 해야 하는 거다. 매일이 바쁘니, 사실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휴일이 되면 알차게 쉬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계획을 지지리 못 짜는 사람임에도 쉬는 날에는 늘 뭐라도 할 일을 만들어 놓는다. 주말에는 보통 하나 이상의 일정이 있고, 누워만 있는 날은 좀처럼 없다. 휴가인데 하나 이상의 일을 하지 않으면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잠깐 돌아보니 삼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휴가를 쓴 적은 없었다. 휴가를 쓰려면 작더라도 이벤트가 있거나, 갑작스러운 휴가가 생기면 적어도 해 보고 싶었던 요리를 도전하거나 세탁소를 다녀오거나 하다못해 밀린 진료를 받으러 병원이라도 가야 마음이 편하다.


 꼭 동동거리며 바쁘지 않더라도,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은 없을 거다. 누워서 천장만 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누워서라도 게임을 하고, 잠이라도 자고, 뭐라도 보고, 읽거나 마시거나 먹고 즐기는 동안 풀어지는 몸과 마음이 쉬는 것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근육을 열심히 쓰면 숨을 깊게 내뱉으며 스트레칭을 해 줘야 하듯,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도 힘을 빼고 늘어져야 하는 거다. 늘 정신머리를 붙잡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긴장을 풀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힘을 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쉴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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