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1일이 되는 자정이면 카카오톡 채팅방은 잠시 먹통이 된다. 모두가 새로운 해를 맞아 복 많이 받아라, 좋은 일만 생기고 건강해라, 돈 많이 벌어라 등등 희망찬 메시지와 덕담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TV에 나오고 무대에 서서 멋진 공연을 한다. 추운 공기를 뚫고 사람들은 보신각 앞에 옹기종기 서서 종소리를 듣는다. 정동진으로 가는 기차표는 매진이고, 그 근처 숙박 업체들도 성황을 이룬다. 듣자 하니 어떤 숙소는 해 뜨는 것을 봐야 한다며 숙소 주인이 방문을 두드리고 다니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새해가 되면 한 살을 더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보다 전 국민이 동시에 한 살을 더 먹으며 느끼는, 나이 듦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새해를 잘 기념하지 않는다. 1월 1일은 휴일이니 퍼질러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보낸다. 해가 뜨는 모습은 굳이 새해가 아니어도 종종 보게 되므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12월 31일도 비슷하게 보냈던 것 같다. 대충 다음 날이 쉬는 날이니 술을 마셔야지 싶다거나 늦게까지 놀 수 있겠거니 하는 마음뿐이다. 새해이기 때문에 마음이 벅차오르거나 뭔가를 꼭 해야만 한다거나 하는 계획도 잘 세우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야지, 하고 생각할 때가 온다고 해도 이미 새해라고 하기에 좀 머쓱한 시기였던 경우였던 것 같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새해로 미루기보다 바로바로 하는 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해를 기념하기 위한 나만의 행사를 꼽자고 한다면, 지난해부터는 달력을 만든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사진이 생겨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만들어 놓고 나니 연하장으로 쓰기 참 좋은 것 같다. 연말연시에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며 달력을 건넨다. 그래서 나는 달력을 만들 때에 당신의 다음 해가 올해처럼 종종 나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며 함께 나이 들고 나를 떠올리기를 바라는 마음. 무사히 내후년에도 만들어서 전해 주고 싶은 마음들로 만든다. 그런 마음들은 말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겠지만, 부끄럽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 된다. 내년의 어느 시점에 만 나이가 도입되면 삼십 대에서 다시 이십 대가 되겠지만, 그대로 서른 살이 되어도 크게 상관없는 기분이다. 오히려 서른이 넘어가며 일과 생활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까. 두 번 살기에는 너무 정신없고 좁은 시야에 창피하고 제멋대로에 자기만 알고 살았던 이십 대를 보냈다. 서른 살이 된다고 나라는 인간이 쉽게 변하겠냐만서도 어쩐지 서른 살 하면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웬만하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점점 나아진 스스로의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