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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un 12. 2023

자고 간다? 최고의 칭찬!

<손님>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운 날들이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하루이틀은 충분히 잠자리를 내어 줄 수 있고, 누워서도 앉아서도 서서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인 것도 좋았다. 그래서 종종 초대장을 만들어 가까운 이들에게 보냈다. 저희 집에 오셔서 주말을 함께 보내 주세요.


초대의 주말이 다가오면 월요일부터 어떤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모자라지 않도록 조화로울 식사 메뉴를 구상하고, 곁들일 음료를 준비하고, 테이블 한켠에 장식할 꽃을 산다. 당일이 되면 눈을 뜨자마자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재료들을 손질하고 가볍게 보관해 놓을 수 있는 메뉴부터 시작해 따뜻하게 내어 놓아야 하는 메뉴까지 차례로 만든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주방에 선다고 생각해도 늘 시간이 모자라는 것은 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창을 열고, 인센스 스틱을 태워 바람에 날린다. 초인종 소리가 언제 울릴까 마음을 졸이고, 마중을 나가 자리를 안내한다. 그가 돌아갈 때까지 어디 부족하거나 불편한 부분이 없는지 자리를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도리겠지만 나는 대개 취해서 먼저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래도 다음 날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테이블과 비워진 그릇들을 정리하며 전날을 곱씹으면 충분히 잘 대접해 돌려보냈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너무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자고 간다? 최고의 칭찬이다. 그만큼 편안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무언가가 부족했다거나 성에 차지 않은 날은 아주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쩐지 이렇게 쓰고 나니 앞으로 누군가를 또 초대하게 된다면 최고의 호스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최근에는 이사를 하고 집이 멀어지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둘이서 먹는 밥도 충분히 근사하고 맛있지만 가끔씩은 밥도 주고 술도 주고 재워도 주는 집의 주인장이고 싶다. 애인과 나는 너저분한 집을 보다못해 정리할 때마다 진담이 가득 섞인 농담으로, 역시 주기적으로 손님이 와야 집이 깨끗하다 이야기하곤 한다.


초대의 말 안에 포함되어 있을 시간과 배려를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을 때면 응하냐 응하지 않느냐를 떠나 감사한 마음부터 가지게 된다. 그게 결혼식이든, 집들이든, 신경 써야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그가 먼저 나를 높여 손'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하여 진상 빌런 '손'이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먼저 예의를 차리고 마음을 건넨다. 나도 누군가에게 반가운 손님이 되고 싶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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