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May 08. 2023

어지러이 뒤섞인 색이 나와 닮았다

<색>

줄곧 좋아했던 색


작년 봄, 사람들 사이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소식이 있다. 바로 싸이월드의 부활. 사람들은 너도나도 복구 신청을 했고, 나 또한 유행에 탑승했다. 복구가 완료된 나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니 그때 그 시절 흑역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중 유일하게 부끄럽지 않은 폴더가 하나 있었다. 'A'라는 이름의 다소 성의 없는 이름을 가진 사진첩 폴더였는데, 당시 내가 좋아했던 일명 ‘감성사진’들을 아카이빙 해놓은 폴더였다. 지금 봐도 내가 좋아할법한 이미지들이었다. 취향 한번 지독하다. 그리고 폴더의 마지막 사진까지 모두 보고 나자 번뜩 깨닫게 됐다. 내가 어릴 때부터 줄곧 좋아했던 건 ‘어지러이 섞인 색’이었구나. 



경계가 불분명한 이리저리 뒤섞인 색


그걸 깨닫고 나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이유를 댈 수 있게 됐다. 짙은 어둠을 바탕으로 별들이 흩뿌려진 우주, 푸른색과 붉은색이 묘하게 뒤섞인 해질녘의 노을, 수많은 파랑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푸른 바다 같은 것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디 하나 튀는 색이 없이 적당히 조화롭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호하지만 멀리서 보면 조화롭게 뒤섞인 색의 형태. 누군가는 뚜렷하지 않아 싫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불분명하고 흐릿한 색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것들이 참 좋다.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자, 그동안 좋아했던 작가와 작품들도 비슷한 화풍을 갖고 있었다는 게 느껴진다. 몇 년 전,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거대한 수련이 그토록 기억에 남았던 건 작품 자체가 주는 위압감도 있었겠지만 내 취향에 꼭 맞는 작품이기 때문일 거다. 오묘한 물빛과 어지러이 섞인 색들. 내가 좋아하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진 모습에 마음이 안 갈 수가 없었겠지.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하나둘씩 이해가 된다.


경계 없이 섞인 색, 흐릿한 나


왜 나는 경계 없이 섞인 색들이 좋을까. 고민은 결국 ‘나’에게 닿았다. 어딘가 나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고, 흐릿하게 흩어져 있는 모습이 나랑 비슷했다. 싸이월드 쓰던 그때부터 색에 대한 취향이 바뀌지 않았던 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같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을 테니까. 나를 쳐내고 쳐내고 쳐내서 남은 단단한 심지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경계 없이 어지러이 뒤섞인 색으로 표현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어떤 색을 좋아하게 될까. 여전히 우주를, 노을을, 바다를 좋아할까. 여전히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고 깊은 감상을 느낄까. 강렬하고 경계가 뚜렷한 원색을 좋아하게 될 날이 올지, 나조차도 궁금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색에 대한 짧은 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