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루하루를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랑을 말하라고 한다면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삶은 사랑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의 사랑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전부를 이야기하기에는 온 지구의 종이를 가져다 써도 모자라니, 나는 사랑의 작은 부분에 대해서만 알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을 떠올리겠지만 사랑은 여러 모습을 하고 있어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일, 취미, 계절, 강아지나 고양이, 신념, 스스로의 모습, 신앙 같은 모습으로 곁에 존재한다. 어떤 사랑은 명확히 보이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 평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 많아지려면 주변을 잘 둘러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김향안과 김환기의 사랑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다 곧 지성이다. 사랑은 지성이다.’ 김향안이 쓴 <월하의 마음>속 문장이다. 나는 이런 사랑의 태도가 좋아 이 문장을 청첩장에도 옮겼다. 부나방 같은 사랑도 사랑이고 추억을 만들 수 있지만 연인이든 우정이든 가족 간의 사랑이든 오래 함께하기 좋은 사랑은 곧 지성이라고. 상대방을 믿음과 존중의 자세로 알아가며 사랑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안 그런 척 해왔지만 나는 꽤 목표지향적인 사람으로 어떠한 기준에 못 미치거나 엇나가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크게 괴로워했다. 모든 것들에 대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그랬다. 좋은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은 보통 좋지 않은 것을 싫어하는 마음도 크다.
그러나 요즈음의 나는 불완전함을 좀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낳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귀여우면 끝난 거라더니, 순 치트키가 따로 없다. 작은 코와 손톱과 발바닥,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소리, 수유 후에 따끈해지는 몸, 숨소리, 통통한 볼, 부드러운 머리카락. 누구나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온통 모여 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나 계속해서 나오는 집안일, 챙겨야 하는 수많은 일정들은 변수가 많아 기준을 세울 수 없는 데다가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기와 한 달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그렇게나 불완전하고 허우적거리는 시간조차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지금껏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이 친구에게도 인격이 생기면 마찬가지로 존중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아기를 낳고 쓴 일기에는 평생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