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타고나길 그런건지, 아니면 무뚝뚝한 경상도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나는 타고난 감정의 온도가 높지 않다. 내 사랑은 늘 끓는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뜨뜻미지근한 온기만을 지니고 있다.
내 딴엔 그 온기를 유지하려고 나름 애를 쓴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되지 못해도, 적어도 따뜻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하지만 세상엔 그렇게 애쓰지 않고도 사랑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저 멀리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바로 나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주는 일.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부지런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40킬로도 채 안 되는 몸을 이끌고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고, 부엌에서 한참을 걸려 음식을 만든다. 갈비찜도 하고, 수육도 삶고, 나물도 무치고, 갈치도 굽는다. 배추김치는 기본이요, 백김치부터 파김치까지, 각자 좋아하는 김치가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종류의 김치가 상에 오른다. 육해공의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의 채워진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할머니의 자그마한 몸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신기하다.
그렇게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정작 할머니는 몇 숟갈 먹지도 않는다. 가족들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는다. 그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배가 터지도록 먹은 뒤에도, 할머니는 그 새를 못 참고 과일을 꺼내온다.
"귤 먹을래? 사과 깎아줄까? 배도 있는데."
할머니의 바람대로 다 먹고 싶지만 좁아터진 나의 위장은 그 사랑을 다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 안타까울 뿐이다.
명절이 끝나길 며칠 전, 또다시 할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전복죽 먹을래?”
사실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전복죽 한 냄비가 끓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전복죽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싶지만, 아마 할머니 마음속 어딘가엔 내가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남아 있는 거겠지. 그래서 갈 때마다 전복죽을 해주시는 거다. 큼지막한 전복이 한가득 들어간 전복죽. 그 어느 식당에도 이런 전복죽은 맛볼 수가 없다.
명절이 끝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야 할 때, 마지막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이번에 가면 두세 달 후에 내려올 거라는 기약을 한다. 통화의 마지막은 늘 할머니의 따뜻한 인사다.
"고마워- 사랑합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 입에서 나오기 어려운 말인데도, 할머니는 자주 그 말을 하신다.
사랑. 마음을 간질이게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아리게도 하는 말.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야 십수 년일 것이다. 줄어드는 시간 앞에서 속상한 건, 사랑은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히 한결같은 사랑이니까 더 아프다.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살짝 났다. (사실 좀 울었다.) 어떤 사랑은 너무 애틋해서, 그게 사라질까 봐 두려워 눈물이 난다. 할머니의 사랑이 없어지는 그날이 벌써부터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