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1
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레몬 싹이 작게 난 화분을 선물받았다. 따뜻한 목에 화분을 놓고 언제 자랄까 열심히 지켜보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어쩌면 조화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깊어지고 나는 크게 앓았다. 스스로조차 돌보지 못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문득 정신이 들어 다시 화분을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이미 싹이 전부 말라 있었다. 그렇게 돋은 싹이 죽고 나서야, 나는 그게 살아 있었다는 걸 알았다.
봄이 오고 나와 같은 레몬 싹을 선물받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자란 레몬을 보았다. 나의 싹과 마찬가지로 겨우내 단 1cm도 자라지 않다가 갑자기 키가 자라고 잎이 돋았다고 했다. 그건 그에게 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이제 키를 키워도 죽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겨우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뿌리와 줄기를 올리고 내렸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걸 알 수 있게 크는 척이라도 좀 하지.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했던 나의 마음이 멋쩍고 미안해 괜히 이파리만 쓰다듬었다.
2
여행이 지도를 펴서 가고 싶은 곳을 짚어나가는 점들에서 시작하는 거라면, 그리고 18인치 캐리어를 돌돌 끌어와 거실 한켠에 펼치는 것으로 끝난다면 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천천히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겨울이나 여름과 달리 봄은 그 자체로 완숙하게 찾아온다. 그 간격은, 슬슬 오는가보다- 와 앗, 왔다! 의 차이 정도로, 어느 쪽이든 왔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존재감은 확연히 다르다. 봄이 여기 옆자리에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은데,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한바탕 비가 오고 봄꽃잎이 질 때쯤에야 진짜 봄이 왔구나-하고 안심하게 된다.
3
지하철에 앉아 한강을 건널 때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목 뒷덜미가 따뜻해지면 그건 조금 지난 봄이고 길가에 돌아누운 사람 등이, 그 옆을 지나가는 고양이가 조금 덜 걱정되면 봄이다.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이 자꾸 떠오르면, 창문을 열고 마시는 맥주가 시원하게 느껴진다면, 그것도 봄이 온 거다.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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