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 속의 공간

<향>

by 빈부분

1.

읏차, 하고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타 차 문을 막 닫았을 때였다.
“베란다 문도 닫고 나왔지?”
엄마는 앞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묻는다. 나는 괜히 엄마를 놀리고 싶어져서, 깜빡 잊은 척 아 맞다! 소리친다. 깜짝 놀란 엄마가 뒤를 돌아볼 때가 장난을 끝낼 타이밍. 씩 웃으면, 엄마는 왜 엄마를 놀라게 하느냐고 구시렁구시렁.. 곧이어 다섯 식구와 과일 상자, 스팸 선물 세트 같은 것들을 잔뜩 실은 자동차가 출발한다.

요즈음은 명절을 쇠러 시골에 가도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지만, 언제인가는 집을 떠나 기본 서너 일을 자고 돌아오는 날들도 있었다. 우리는 십일 층에 살고 있었지만 혹여 도둑이 옥상에서 끈을 달고 내려와 무언가를 훔쳐 가지 않을까, 모든 창문을 걸어 잠그고 집을 나섰다.


창문을 모두 닫았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열심히 노는 것에 전념할 수 있었다. 돌아갈 날이 되자, 못다 찧은 꽃잎들을 두고 떠나는 게 아쉬우면서도 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자 본능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드디어 집이다-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침대의 포근함도,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화장실 수도도 아닌 삼사 일 동안 모든 창문이 닫힌 채 고여 있던 집의 냄새다. 디퓨저를 꽂아 놓은 것도 아니고 새 집 냄새도 아닌 것이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향. 작은 두 개의 콧구멍 속으로 집이 들어온다. 집이 느끼는 외로움을 향으로 만들면 그런 냄새가 날까. 혼자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다가도 갑자기 돌아온 우리를 반기듯 어색하지만 안심이 되는 냄새. 집이 가족으로 느껴질 때가 그런 때였다.


공간의 향은 공간을 쓰는 사람의 향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놀러 갔던 친구의 집에서는 그 애가 입던 티셔츠 냄새가 났고, 커피 마시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커피의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의 공간에는 쌉쌀한 향기가 난다. 겨울바람을 맞고 들어온 사람에게 겨울 냄새가 나는 것처럼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냄새는 그렇게, 짧든 길든, 그 공간에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존재했음을 콧구멍 속으로 보여 준다.



2.
나는 무언가에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향을 만나면 금방 취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향이라는 단어에는 아무래도 조금 딱딱한 격식이 있다. 꽃 향, 향수, 로션 향 같은 것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뭐랄까, 이성적인 부분에 더 가깝다는 기분이 든다. 반면 살 냄새, 음식 냄새, 엄마 냄새처럼 그 자체만으로 육체의 근육이 이완되는 냄새들은 저 밑바닥 어딘가에 있는 나를 붙잡아 데리고 올라온다. 냄새는, 향보다 조금 더 눈을 감고 맡는 것들이다.

p.s 제주의 핀크스 포도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일이 있다. 체크인 로비가 바로 맞은편이어서 어슬렁 구경하던 중 공기 중에 동실 떠다니는 향이 포도 향이라는 걸 깨닫고 말았는데, 정말 포도 향이 포도 호텔과 가장 장 어울리는 향이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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