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오감 - 시각, 청각, 미각, 촉각 그리고 후각 - 중 '후각'을 자극하는 '향'.
보고 듣는 것은 당연히 그러하고, 맛이나 감촉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있다. 하지만 유독 '향'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 향에 대해 떠올리다 보면 뜨문뜨문 감각이 일시적 살아날 뿐, 형체가 있는 무언가로 떠올리기가 참 어렵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 냄새, 도서관의 책 냄새, 내가 가장 자주 쓰는 향수, 매번 사용하는 섬유유연제조차도 무슨 향이었나 떠올리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향'이 주는 강력한 힘이 있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만큼 희미하지만, 때론 그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는 감각이다.
향은 존재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이다. 매력적인 것을 더욱 매력적이게, 존재를 더욱 실재하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의 묘약, 향.
바다 바다를 더욱 바다답게 만들어주는 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파랑, 일정한 간격으로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파도소리도 있겠지만, 바람에 함께 실려오는 짠내도 있다. 그렇게 너른 바닷가가 비로소 실재함을 알게 해주는 건 코끝을 톡 쏘는 바닷가의 짠내다.
나의 고향은 우리나라의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인데, 고향의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내가 서울을 떠나 고향에 왔음을 한 번에 알 수 있다. 들이쉬는 숨에서 짠내가 맴돌거든. 바다야. 바다가 근처에 있어. 투박한 바다의 향은, 파랑이 보이지 않아도,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바다가 곁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책 도서관 혹은 서점에 무(無) 향의 책들만 한없이 꽂혀 있다면 어떨까. 과연 서점이, 도서관이 지금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발달로 더 이상의 종이책이 필요 없을 법도 한데, 여태껏 찾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이 역시 책이 주는 향 때문이 아닐까.
책장의 감촉, 그리고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훅 밀려오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은근하게 그 냄새에 중독되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책에서 풍겨오는 그 향이 '독서'라는 행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첫인상 향은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밋밋했던 관계에 내가 좋아하는 향이 더해진다면,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그저 그랬던 사이에 불쾌한 향이 끼어들면 영원히 그 사람이 싫어지기도 한다. 존재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가지만 가끔 나를 뒤돌게 만드는 향들이 있다. 좋은 향수 냄새, 샴푸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들. 그런 향 때문에 내 시선에 잠시나마 존재했던 이들이 생겨난다.
사람 사람에게서 나는 고유의 냄새도 있다. 똑같은 세탁기에 똑같은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사용해서 옷을 빨아도 동생의 옷에선 항상 동생 냄새가 났다. 그것이 나도 너도, 그 누구도 아닌 동생의 옷임을 알게 해주는 그 냄새. 할머니 집에서 나는 냄새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을 할머니의 공간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어느 집에나 다 있는 TV도, 식탁도, 냉장고도 아닌, 할머니의 이불 냄새였다.
향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실체 없는 무언가를 붙잡아 글로 빚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향은, 우리 존재의 실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어떤 향을 가진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