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른의 소주

<술>

by 빈부분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이제는 정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생겼다. 아직도 유치뽕짝한 히어로 애니메이션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든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걸핏하면 죽인다든지, 요리를 할 때 가끔 몰래 쇠고기 다시다를 넣는다든지 하는 사실들이다. 스스로의 이런 모습들은 좀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뭐든 멋지게 잘 해내는 어른으로 보이고 싶으니까.


누군가에게 술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우물쭈물하게 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잘 마시면 당당하기라도 할 텐데, 내 조그맣고 비실한 간은 소주 서너 잔에도 금세 헤롱 거리고 만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른 것이라는 말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누군가와의 첫 대작부터 호기롭게 술을 좋아합니다! 하기엔 나의 주량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건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 사이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리고 열에 아홉 번은 주량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승기를 드는 바람에 어느새 속절없이 취해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어쩌다 그 지경으로 술을 좋아하게 되었냐 물으면, 처음으로 혼자 소주를 마신 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집에 가는 길에 감자탕 1인분을 포장하고 괜히 소주를 한 병 샀다. 맥주라면 혼자서도 종종 마셨지만, 소주병을 집어 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뭐라도 하기는 해야겠으니, 작업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매일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그 날은 괜히 고뇌하는 어른인 척해 보고 싶은 날이었을 거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감자탕 봉지를 풀어 대접에 부었다. 뜨끈하고 짭짤한 감자탕과 섞박지를 놓고 소주병을 두어 바퀴 돌려 뚜껑을 땄다. 소주잔이 없어 간장 종지에 투명한 소주를 꼴꼴 따르고, 시래기와 고기 건더기를 겨자 소스에 푹 찍어 입안 가득 품고, 소주를 쭉 들이켰다. 두어 잔 마시니 지치고 붕 떠있던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해졌다. 차가운 소주와 따뜻한 국물이 동시에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과 혀 위로 감도는 알싸하고도 달큼한 맛을 느끼고 있자니, 이게 진짜 으른의 소주구나 싶었다.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의 소모도 하지 않고도 울적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스물다섯의 여름이었다.


함께 마셔야 즐거운 술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인생의 축복이다. 물론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술맛이 뚝 떨어질 때도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에서 행복을 느끼거나 서로의 취기에 웃고 놀리고 떠든 다음 이야기에 귀도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다. 물론 꼭 술을 마셔야만 그렇게 놀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와 맥주 한 잔 하면서 하는 이야기의 맥락이 조금씩 다를 때도 있으니까. 같이 사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다.


맛있는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술을 먹고 마신다는 건, 사실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다. 하루를 보내며 경험한 수많은 생각들과 일어난 사건들에 비하면 단순히 배를 채우는 동물적인 행위에 불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 또는 함께 먹고 마시며 버려도 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 안이기만 하다면, 고된 하루를 살아낸 으른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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