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Eva Armisen. 18년 12월.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9. 1. 7. 1:33 작성.
제목이 이렇게 와닿는 전시가 있었을까.
에바 알머슨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그림의 구도가 어떤지,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현대미술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지, 어떤 기법을 썼는지 몰라도 된다.
모네의 그림인지, 카유보트의 그림인지 헷갈려 하지 않아도 된다.
빼곡한 책자를 읽고 캡션 한 번, 그림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볼 필요도 없다.
그저 아름다운 색에 빠져, 수줍게 벌름거리는 코를 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에바 알머슨을 처음 접한 건 5년 전 서울옥션 강남점에서였다. 그때도 부담없는 그림체와 행복한 묘사, 맑은 느낌으로 좋은 기억을 갖고 보았다. 전시를 주최한 디커뮤니케이션의 김대익, 이동하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옥션 전시 이후에도 아트페어나 하나은행 광고에서 가끔 접했고 작년에도 월드타워 애비뉴엘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었다고 한다. 익숙해서인지 큰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가 반가웠다.
학생 때는 한가한 평일 오후에 느긋하고 여유롭게 보는 맛이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한가람이나 국현 같은 곳은 이제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이 아쉽다. 아직 대규모 전시를 하지 않는 소소한 갤러리들이 그나마 안식처가 된다.
이번에는 아주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말 오후에 각오를 조금하고 미술관을 찾았다. 피카소와 큐비즘, 이매진 존레논 전시로 관람객이 조금 분산되길 바랐지만 전시 성격 상 가족 단위로 온 사람이 많아서인지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전시에서 조금 여유롭게 감상 하는 팁이라면 오픈 시간에 맞추어서 가는 것.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반대로 입장을 막는 시간 즈음 전시 초입으로 돌아가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천천히 보면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알머슨의 그림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도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즐거움을 느끼려 많이 노력하는 편이지만 정신없는 일상 속에 세상 사람들과 서로 때를 묻혀가며 돈, 직업, 이성이 성공의 척도이고 행복의 잣대인 양 생각하고 말할 때가 많다.
고개를 들어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고개를 숙여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며 감상에 젖을 줄 아는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같이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알머슨의 그림은 그 친구 같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사무실에서 퇴근 즈음 보는 진한 노을, 주말에 보는 그림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주는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한번 돌아보게끔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색이다. 김종학 화백의 설악산 풍경을 좋아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박함보다는 섬세함이 돋보이지만 색의 조화로움이나 화려하지만 난잡해보이지 않는 세련됨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보고 있으면 소재가 주는 느낌과는 별개의 즐거움을 준다. 이미지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아이들만을 위한 작품 설명이다. 첫 그림에 보면 낮은 위치에 빨간색 캡션으로 아이들을 위한 작품 설명이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읽어보면 쉬운 표현으로 대화하듯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전 국현 서울관에서 했던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설명이 주요 작품마다 있었는데 참 좋았다.
그림을 볼 때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눈으로 편안하게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감상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심지어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읽어보면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설명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테마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다. 스페인 작가의 손으로 그려진 서울 풍경. 서울 배경으로 한 그림 속 인물들은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다만 서울에도 고즈넉하고 매력적인 곳들이 많은데 서울 테마 대부분의 배경에 고층 빌딩만 빼곡한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래도 한국 전시를 위해 서울 풍경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한 마음이 정말 고맙다. 다음 번에도 따뜻한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소 의아했던 점 두 가지.
캡션을 보면 제목의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뜻이 조금씩 다르던데 작가의 의도인지, 의역을 한 것인지.
오브제의 경우 작품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