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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채 May 28. 2024

[EP.3] 저무는 하루 사이로 피어나는 감각

오사카 여행_2일차

  1월의 짧은 겨울 해가 지기 전에 미리 ‘하루카스 300’에 가 있기로 했다. 티켓 발권 후 60층으로 이동했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라길래 살짝 무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상영하는 우주 공간을 테마로 한 미디어 아트를 구경하다 보니 걱정할 새도 없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앞에 마치 거대한 족자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360도 전망대의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인 전경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새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모습일까. 지평선까지 빼곡한 건물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레고로 조립한 거대한 세상 혹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퍼즐 같았다. 그 사이로 걷는 나는 얼마나 작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다지도 작은 사람의 마음에 무슨 파도가 그렇게나 많은지 인간이란 존재가 새삼스러웠다. 저 멀리 돈키호테의 상징인 노란색 구조물을 보였다. 낯선 군중 속에서 아는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오사카의 동서남북을 구경하다 보니 광활한 도시 위로 점차 그늘이 드리웠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자 야경의 진가가 드러났다. 역시 빛이 존재하기 위해선 어둠이 필연이었다. 해가 자취를 감출수록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은 뚜렷해졌다. 어둠을 뚫고 발산하는 빛과 불빛 사이로 응집된 어둠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거대한 낭만이었다. 별처럼 빛나는 수천수만 개의 불빛에 가슴이 뛰었다. 누구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멋지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 연신 진부한 감탄사만 내뱉으며 바라보기를 한참,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그 위로 여러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이 순간 ‘미쳤다’, ‘대박이다’, ‘멋있다’ 따위의 가벼운 호들갑을 나누고 싶었다. 아무래도 혼자 보기엔 아까운 심정이었다. 최대한 잘 나온 사진을 선별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송한 뒤 캄캄하게 반짝이는 풍경 앞에서 묘한 그리움과 고독을 삼켰다.      


  저녁은 ‘모토무라 규카츠’에서 먹기로 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큼 대기가 어마어마했다. 무려 1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혈혈단신으로 서 있으려니 퍽 민망했다. 그나마 기댈 데라곤 드문드문 혼자 온 사람이 보일 때였다.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위안이 됐다.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하기도 했는데 나는 딱히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궁금한 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입장했는데 아뿔싸, 4인 테이블이었다. 그 순간 식사 중인 팀 중 1인은 내가 유일했다. 차라리 주방과 맞닿은 바 테이블이 나았을 것 같았다. 나 혼자 떡하니 차지하는 4인 테이블이라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재차 확인까지 했다. “Here..?” 하니 맞단다. 가게 내부도 협소한 편이었는데 하필이면 옆 테이블과 간격도 밭았다. 이 무슨 군중 속 고독이란 말인가. 이미 혼자인데 혼자 있고 싶어졌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맛집이라 그런지 그냥 한국 식당 같았다. 내 옆 테이블에 앉았던 커플과 그들이 떠난 다음 이어서 들어온 일가족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예 외국인이면 괜찮은데 왠지 한국인이면 더 신경 쓰였다. 모르는 사이보다 어설프게 아는 사이가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주변에 한국인이 아예 없으면 또 그것대로 불안했다. 어쩌자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았다.      


  내 안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석쇠와 규카츠, 밥과 장국, 그리고 각종 소스가 정갈한 차림으로 앞에 놓였다. 서둘러 규카츠를 석쇠에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금방 익었다. 개인적으로 미디엄 레어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리 오래 익히진 않았다. 취향껏 구운 고기에 원하는 소스를 얹어다가 한입에 넣었다. 오랜 기다림이 아쉽지 않을 만큼 아주 맛있었다. 나중엔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조금씩 아껴먹었다. 한 입 거리도 두 번에 나눠 먹었다. 도망치고 싶어 했으면서 어느새 있는 힘껏 음미하고 있었다. 물론 눈치깨나 보며 먹었지만 스스로조차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 펴고 당당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죄지은 것도 아니고 움츠러들 이유 따위 없었다. 새로운 고기 한 점을 석쇠에 올리며 아까 기다리면서 봤던 1인 여행자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도 이렇게 먹고 갔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고기를 뒤집었다. 양극단의 감각이 공존하는 혼란 속에서도 행복은 어김없이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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