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무게

배움에는 때가 없습니다만..... 으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열정이 있다.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누군가는 악기를 배우고,

누군가는 외국어에 도전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배운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

솔직히 존경스러운 일이다. 정말로.


문제는 그 열정의 실습 대상이 나라는 점이다.


소송을 진행 중인 의뢰인 한 분이 계신다.

은퇴하신 후 노인대학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계시다고 했다.

최근에는 ChatGPT 사용법을 익히셨단다. 훌륭한 일이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분이 얼마 전부터 내게 뭔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열어보면 ChatGPT로 작성한 법률 분석들이었다.


배운 것을 복습하고 계신 모양이었다.

열심히 질문을 입력하고,

답변을 받아 정리하고,

그것을 내게 보내 검토를 요청하시는 것이다.

학습의 선순환이랄까.

다만 그 순환의 한 축이 나였을 뿐.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AI의 법률 문제에 대한 조언은 불완전하다.

우리 법무법인에서도

리서치 용도로 여러 AI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AI의 경우,

개별 사안에 딱 들어맞는 답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변호사 전용 법률 AI도 있지만,

그것조차 틀린 답을 내놓을 때가 제법 있다.


그래서 의뢰인이 보내주시는 내용 대부분은

우리 사건과 관련이 없거나,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렇다고 말씀드리면 왜 그런지 설명해 달라고 하신다.

설명을 드리면 또 다른 질문이 도착한다.

AI가 이렇게 말하는데 왜 다르냐고.


문득 오래전에 본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레스토랑에서 몇몇 남자들이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주인공이 다가가 정중하게 금연을 요청했다.

그들은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다"며

오히려 주인공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주인공은 갑자기 바지를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테이블에 소변을 봐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없군요.

이건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입니다."


물론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지는 분명했다.

세상에는 규정으로 정해두지 않아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신다.


사건을 하나 맡기시면,

그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질문하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가정에 가정을 더한다.

상대방이 이렇게 하고,

상황이 저렇게 바뀌고,

그러면서 뭐가 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하나하나 설명을 요구하신다.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상황들에 대해서.


또 어떤 분들은

유튜브, 블로그, 그리고

요즘은 AI에서 찾아온 정보들을 잔뜩 모아오셔서

매일매일 질문을 한다. 저 의뢰인처럼.


그럴 때는 정말

옛날 변호사들처럼 시간을 재서 별도의 상담료를 청구하고 싶을 때가 있다.

농담이 아니라.


이쯤에서 오해 없도록 말씀드리고 싶다.


변호사가 법을 아는 건 당연하고,

아는 걸 말해주는 게 뭐가 어렵냐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질문도 쉽게 답하는 법이 없다.

근거를 확인하고, 정확성을 몇 번이나 검토한 후에 말씀드린다.

그것이 우리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고깃집 사장님의 고기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의뢰인께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하루에 몇 차례씩 이렇게 보내주시는 건 조금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고.

그분은 알겠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몇 시간 후, 또 도착했다.


아무래도 잊으신 모양이다.

배움의 열정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꺼지지 않는.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날씨가 좋았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인연이리라.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예상치 못한 종류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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