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들러의 책상 앞에서

그래도 나는 앉아 있다

몇 달 전부터

매일 글을 한 편씩 쓰는 챌린지에 참가하고 있다.


글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 필요했다.

글쓰기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솔직히 쉬울 거라 생각했다.

매일 글 한 편 쓰는 게 뭐가 어려울까.

직업 특성상 하루의 대부분을

뭔가 말하거나 쓰면서 보내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가끔씩 이 일이 녹록지 않음을 느낀다.

일이 많아서 파김치가 되는 날이 있고,

외부 일정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다.

두 가지가 동시에 겹쳐서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날도 있다.

바로 오늘처럼.


그런 날은 '뭔가 써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은근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컴퓨터 앞에 앉아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글이라는 것이 마치 뚫리지 않는 벽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챌린지는 '뭐든지', '한 줄이라도' 쓰기만 하면 통과다.

심지어 다음 날이라도 작성해서 올리면 된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주제로, 어느 정도는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챈들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먼저 책상을 정하라.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가령 두 시간이면 두 시간,

그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

글이 술술 써지면 좋겠지만,

써지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전혀 쓰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비록 한 줄도 쓰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앉아 있으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오로지 버티고 앉아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더라도,

쓰는 것과 똑같은 집중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방식을 대체로 좋아한다고 했다.

외적 요인에 의뢰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깨끗해서 좋다고.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전쟁터에 가거나 아프리카의 산을 오르거나

카리브 해에서 청새치를 낚아올려야만

글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여담으로 저 부분은 하루키 선생의 표현인데..

아무래도 헤밍웨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뭐. 하여튼)


평범한 하루, 평범한 책상, 평범한 시간.

그것만으로도 글은 태어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버티고 앉아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특히 피곤한 날에는.


그래서 요즘 조금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꼭 책상 앞에서만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출퇴근길에 음성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잠들기 전 휴대폰에 짧은 문장 몇 개를 적어두기도 한다.

산책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메신저에 보내두기도 한다.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괜찮다.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무언가를 적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챈들러의 방식을 살짝 변형한 셈이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대신,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태세를 유지하는 것.

쓰지 않는 날에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언젠가 다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고

챈들러는 말했다.


나도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오늘은 한 줄밖에 쓰지 못해도,

내일은 조금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초조해하며 쓸데없는 짓을 해봤자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지금 이 글도 사실 억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글이라는 것은 가끔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속인다.


창밖으로 겨울 바람이 분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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