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알려준 것들 ④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것 — 책을 덮으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소개한다.

현미경으로 신경세포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한다.

뇌과학자다운 방법이다.

그는 신경세포를 관찰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 신경세포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구나.

결국 이것도 화학 반응에 불과하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괴로움은

어떤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눈앞의 이 세포들이 만들어낸 전기 신호일 뿐이구나.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슬픔이나 괴로움을 객관화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나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뇌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가벼워진다.


사람마다 뇌를 달래는 방법은 다르다.

누군가는 달리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현미경을 들여다본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스트레스 해소에 대해 의외의 이야기를 한다.

운동이나 음악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믿음 자체가

실제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와 같은 원리다.

해소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

그 믿음이 이미 해소의 일부다.


결국 해소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느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받더라도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문장이 있다.


"도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언제든 도망칠 곳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쥐 실험 이야기가 나온다.

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실험에서,

버튼을 누르면 언제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알려주자,

쥐는 스트레스를 훨씬 덜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도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회피 가능성이 스트레스를 줄여준 것이다.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길은 있다.

저자는 조금 극단적인 표현까지 쓴다.

최악의 최악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도피처가 남아 있으므로

여전히 분발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어차피 모든 것은 끝이 있는데,

지금의 작은 실수나 나를 괴롭히는 일들에

연연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나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이 조금 작아 보인다.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위로가 되었다.

출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감옥이 덜 답답해지는 것처럼.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재를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힘내라"라는 말이 금기어라고 한다.

그보다는 "지금은 그런 시기니까 잠시 쉬고 있으면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쉬게 되면,

쉬는 것 자체가 초조함이나 열등감을 유발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아무렴 어때" 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태도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어떤 문제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을 가지는 것.


책을 덮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을 느끼고,

가끔은 의욕이 바닥을 친다.

하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스트레스는 적응하면 줄어든다.

불안은 똑똑한 뇌의 증거다.

의욕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 생긴다.

그리고 언제든 도망칠 곳이 있다.


뇌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이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었다는 것,

나약함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설계된 대로 작동하고 있었을 뿐이다.


책을 서가에 꽂았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걷고 싶었다.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었다.

세타파가 필요했다.


이번 휴정기 때는

또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세타파를 얻기 위해서.




� 『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 이케가야 유지 지음 | 김준기 옮김 | 포레스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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