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손안에 돌아오는 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나가와 원숭이」를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 중

「시나가와 원숭이」라는 단편이 있다.

미즈키라는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이름만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것들은 모두 기억한다.

친구 이름도, 지나가는 가게 간판도, 남편의 생일도, 어제 먹은 저녁 메뉴도.

오직 자신의 이름만 떠오르지 않는다.


이상한 설정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나는 정말 나일까. 그런 질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집에 돌아오자 미즈키는 원숭이에게서 되찾아온 '오자와 미즈키'라는 낡은 이름표와 '안도(오자와)미즈키'라는 이름이 새겨진 은팔찌를 갈색 서류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밀봉하고 벽장 안의 종이박스에 넣었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손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 그녀의 이름이고 그 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도쿄기담집』 중 「시나가와 원숭이」


이 마지막 문장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래 끌어온 일이 있었다. 몇 년이나 걸렸다.

처음에는 일 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게 이 년이 되고, 삼 년이 되고, 사 년이 되었다.

중간에 끝났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제 됐다고 안도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또 다른 무언가가 불쑥 나타나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손에 쥔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미즈키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것들이 흐릿해졌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다.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전부 꺼내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들어준다. 위로도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몇 년씩 이어지면 상대도 지친다.

나도 지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싫어진다.

결국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쌓였다.

그 시간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 무렵 「시나가와 원숭이」를 다시 읽었다.


미즈키는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생각해보니 나도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내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

그런 것들이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사라진 줄도 몰랐다.


미즈키는 원숭이에게서 이름을 되찾았다.

소설 속에서는 그랬다.

나는 누구에게서 되찾아야 할까.

원숭이도 없고, 상담사도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그렇게 사 년이 흘렀다.


그리고 며칠 전, 일이 끝났다.


진짜 끝인지는 아직 모른다.

또 무언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일단 손에서 놓았다.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붙잡고 있으면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다.


마침내 나의 삶이 손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 문장이 떠올랐다.

미즈키의 이름이 돌아온 것처럼, 나의 삶도 돌아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체중도 늘었고, 체력도 떨어졌다.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 나의 삶이고 그 밖에 다른 삶은 없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키는 그렇게 썼다.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희망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절망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평하건 불공평하건,

자격이 있건 없건,

있는 그대로.


오늘 아침 창밖을 보니 해가 떠 있었다.

별것 아닌 풍경이다. 매일 보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달랐다.


나는 앞으로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불편한 것도 있을 것이고, 아직 해결해야 할 것들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다른 길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미즈키처럼,

나도 이제 내 삶을 되찾았다.

갈색 서류봉투에 넣어 벽장 안에 밀봉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손안에 돌아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뇌가 알려준 것들 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