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전쟁에 대하여
카이가 새벽마다 국도변 주유소에 들르기 시작한 것은
그해 가을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10월 둘째 주 화요일이었다.
도시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그는 낡은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시내에서 이십 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24시간 주유소였다.
기름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곳의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것은 습관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새벽이 되면 눈이 저절로 떠졌고,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끌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어떤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엇을 확인하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카이는 쉰한 살이었다.
도시 외곽의 작은 상가 건물 2층에서
중고 음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를 연 지는 18년이 넘었다.
LP와 CD를 주로 취급했고,
가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도 들어왔다.
한때는 단골이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드문드문 찾아오는 몇 명뿐이었다.
스트리밍 시대에 실물 음반을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매출은 적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가게 위층에 작은 방이 있었고,
월세가 낮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혼자 살았다.
결혼한 적이 있었지만 10년 전에 끝났다.
아이는 없었다.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동업자가 있었다.
동업자의 이름은 준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함께 밴드를 했었다.
카이는 베이스를 쳤고, 준은 드럼을 쳤다.
둘 다 음악으로 먹고살 만큼의 재능은 없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졸업 후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준이 제안했다.
"같이 음반 가게를 해볼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 몇 년은 좋았다.
서로의 취향이 달랐기 때문에 오히려 잘 맞았다.
카이는 재즈와 클래식을 담당했고,
준은 록과 펑크를 담당했다.
손님들은 두 사람 중 취향에 맞는 쪽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가게가 힘들어지면서
서로의 지분을 둘러싸고 다투기 시작했다.
누가 더 많이 투자했는지,
누가 더 많이 일했는지.
처음에는 작은 의견 충돌이었던 것이 점점 커져서
결국은 변호사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카이는 이길 줄 알았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금의 대부분이 자신의 것이었고,
가게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도 자신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3년에 걸친 분쟁 끝에
카이는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법적으로 따지면 그가 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소모했다.
변호사 비용, 감정평가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
결국 남은 것은 빚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태였다.
정확히 제로.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주유소 편의점에 도착하면 카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창가 쪽 플라스틱 의자였다.
테이블은 좁고 의자는 딱딱했지만
앉기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앉아서 국도를 바라보았다.
새벽이라 차가 거의 없었다.
가끔 화물트럭이 지나갔다.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멀어져 갔다.
캔커피를 마시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은 저절로 떠올랐다.
준의 얼굴.
마지막으로 본 것은 1년 전이었다.
법원 복도에서였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은 고개를 돌렸고, 카이도 그랬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의 마지막이 그것이었다.
때때로 카이는 그것이 정말로 일어난 일인지 의심했다.
분쟁이 일단락된 것은 그해 8월이었다.
카이는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 달 뒤, 준 측에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예전에 작성했던 서류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카이는 그런 서류가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이 두 번째 패배였다.
패배라기보다는 습격에 가까웠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꽂은 것 같았다.
카이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저 가게 안에 앉아서 벽만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새벽 주유소 방문이 시작된 것이었다.
왜 새벽이었을까.
카이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아침이 되기 전에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해가 뜨면 우편물이 온다.
법원 서류가 올 수도 있다.
새로운 문제가 날아올 수도 있다.
새벽은 그런 것들이 오기 전의 시간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
그 시간 동안만큼은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왜 하필 그 주유소였을까.
왜 그 편의점이어야 했을까.
카이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 가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캔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트럭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무엇을 확인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날 카이는 인터넷에서
오노다 히로에 대한 글을 읽었다.
오노다 히로.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도
30년 동안 필리핀 정글에 숨어 지낸 일본군 장교.
그는 전쟁이 끝난 줄 몰랐다. 아니,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연합군의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싸웠다.
존재하지 않는 적과. 이미 끝나버린 전쟁에서.
글을 읽으면서 카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도 저 사람과 비슷한 게 아닐까.
이미 끝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없는 정글에서 혼자 총을 들고 경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카이는 컴퓨터를 껐다.
오노다 히로가 정글에서 나온 것은 1974년이었다.
그의 옛 상관이 직접 찾아와서 공식적인 철수 명령을 내렸을 때였다.
그제야 오노다는 총을 내려놓았다. 30년 만에.
카이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30년 동안 숨어 살았던 정글.
적이 올까봐 매일 경계했던 나날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순간 오노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도했을까, 아니면 허탈했을까. 아니면 그 둘 다였을까.
카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에게도 누군가 철수 명령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총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카이에게는 가까운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가게에 자주 오는 단골이 있었다.
진이라는 이름의 사십대 남자였다.
7년 넘게 드나들던 사이였다.
진은 카이가 힘들어할 때 곁에서 술을 함께 마셔주었다.
하지만 카이는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 수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여자도 있었다.
2년 전부터 가끔 보는 사이였다.
그녀는 카이에게 친절했고, 카이도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역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너무 가까워지면 상대방이 선을 넘는다는 것을 카이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준과의 일에서 배운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혼자 감당해야 했다.
분쟁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책망뿐이었다.
왜 그랬냐고. 왜 미리 대비하지 않았냐고.
그런 말을 들으면 카이는 더 움츠러들었다.
그래서 새벽 주유소만 남은 것이었다.
12월이 되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졌다.
카이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았다.
손이 시려서 캔커피를 감싸 쥐었다.
편의점 안에서 희미하게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80년대 팝송이었다.
그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카이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새로운 문제도, 새로운 서류도.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하지만 아침이 되면 또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 분쟁이 끝난 것은 지난주였다.
카이는 거의 5천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이자까지 합친 금액이었다.
그 돈을 내고 나니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빚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태.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이전으로.
결론적으로
카이는 4년간의 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처음에 준 측에서 제안했던 대로 그냥 끝냈더라면 어땠을까.
한 푼도 안 받고 그냥 헤어졌더라면.
금전적 손해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변호사 비용도, 이자도, 시간도.
하지만 카이는 싸우기를 선택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날 밤 카이는 꿈을 꾸었다.
정글 속에 서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멀리서 새 소리가 들렸다.
카이의 손에는 녹슨 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숲이 밝아졌다.
나무들이 사라지고,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다.
카이가 서 있는 곳은 주유소 편의점 앞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그날 새벽, 카이는 예정대로 주유소에 갔다.
평소보다 일찍이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고,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편의점 창가에 앉아서 카이는 국도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도로였다.
아직 빛이 닿지 않아서 아스팔트가 검게 보였다.
가끔 차가 지나갔다.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갈랐다가 사라졌다.
그 반복이 마치 호흡처럼 느껴졌다.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카이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
오노다 히로는 정글에서 나온 뒤 일본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30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그가 알던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적이었던 미국은 이제 동맹국이 되어 있었고,
일본은 전쟁을 잊고 경제 성장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결국 오노다는 브라질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카이는 그것이 이해가 되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하지만 카이는 떠나지 않았다.
여기가 그의 자리였다.
이 도시가, 이 가게가.
도망치지 않을 것이었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수평선처럼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빛이 번져 나왔다.
어둑어둑하던 하늘이 조금씩 색을 바꾸었다.
주유소 조명이 필요 없어지기 시작했다.
카이는 일어섰다.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어깨가 뻣뻣했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이었다.
그때 카이는 깨달았다.
전쟁은 끝났다.
아무도 철수 명령을 내려주지 않았지만, 전쟁은 이미 끝나 있었다.
준은 더 이상 그의 적이 아니었다.
분쟁도 끝났다.
더 이상 싸울 것이 없었다.
30년을 숨어 지낸 오노다와 달리,
카이는 4년 만에 깨달은 것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낭비한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준과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
가게가 있었다.
비록 손님이 줄었지만 여전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음반들이 있었다.
벽면 가득 꽂혀 있는 LP들.
누군가가 와서 집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
그리고 시간이 있었다.
50대 초반은 아직 젊은 나이였다.
적어도 20년은 더 일할 수 있었다.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빚도 없고 재산도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카이는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톰 웨이츠의 노래였다.
새벽에 듣기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새벽에 이곳에 올 것인가.
카이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당분간은 올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의미는 달라질 것이었다.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아침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서 카이는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몸을 적셨다.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커피를 내렸다.
원두를 갈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커피 향이 방 안에 퍼졌다.
카이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바깥으로 상가 건물들이 보였다.
간판에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카이는 그것이 좋았다.
오후에 가게를 열었다.
문을 열고 조명을 켰다.
음반들이 벽면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다.
카이는 천을 들고 진열대를 닦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손님이 왔다.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재즈 코너를 뒤적거리더니 마일스 데이비스의 LP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거 상태 어때요?"
"꽤 괜찮아요. 재킷은 좀 낡았지만 음반 자체는 깨끗해요."
젊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카운터로 가져왔다.
카이는 LP를 봉투에 넣어 건넸다.
"감사합니다."
"네. 또 오세요."
문이 닫히고,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카이는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구나.
음반을 팔고, 손님을 맞고, 하루를 보내는 것.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다.
저녁에 진이 찾아왔다.
맥주를 사왔다.
둘이서 가게 뒤쪽 작은 공간에 앉아 마셨다.
"요즘 좀 나아 보여."
진이 말했다.
"그래?"
"응. 얼굴색이 좋아졌어."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뭔가 있었어?"
"글쎄. 딱히."
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카이는 그것이 고마웠다.
밤이 되어 가게를 닫았다.
조명을 끄고, 문을 잠그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작은 방이었다.
침대와 책상과 작은 스피커가 있었다.
카이는 스피커에서 음악을 틀었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 트리오였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카이는 생각했다.
4년이었다. 4년 동안 싸웠다.
그리고 졌다.
금전적으로 보면 완벽한 패배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4년 동안 카이는 많은 것을 배웠다.
자신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쟁은 이미 끝났는데
혼자서 계속 싸우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일주일이 지났다.
화요일 새벽,
카이는 다시 주유소에 갔다. 습관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편의점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카이는 생각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온 게 아니다.
그냥 이 시간이 좋아서 온 것이다.
해가 뜨기 전의 고요함.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 캔커피의 따뜻함. 그런 것들.
봄이 왔다.
카이는 여전히 가끔 새벽에 주유소에 갔다.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때로는 그냥 잠을 더 자기도 했다.
가게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젊은 손님들이 늘었다. LP가 다시 유행한다는 말을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았다.
어느 날 카이는 우연히 준의 소식을 들었다.
공통 지인에게서였다.
준이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고 했다.
다른 일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음반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카이는 그것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화가 나지 않았다.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약간의 허탈함 같은 것이 있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전쟁은 끝났다.
준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일 뿐이었다.
카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가로수의 가지들이 흔들렸다.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새로운 계절이었다.
5월이 되었다.
카이의 생일이었다.
쉰두 살. 별것 아닌 나이였다.
특별히 축하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저녁에 진이 케이크를 들고 왔다.
작은 케이크였다. 초가 두 개 꽂혀 있었다.
"뭐야, 이거."
"생일이잖아."
카이는 웃었다. 오랜만이었다.
둘이서 케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소원은?"
진이 물었다.
카이는 잠시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그런 것들은 너무 흔한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카이는 대답했다.
"이대로 괜찮아."
밤늦게 진이 돌아갔다.
카이는 혼자 남았다.
작은 방에서.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이었다.
카이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다. 눈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졌다.
천장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이는 생각했다.
1년 전의 자신에게 지금의 상황을 말해준다면 믿을까.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전쟁이 끝났다고,
이제 괜찮다고.
그런 말을 해 줘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카이는 알고 있었다.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들더라도,
결국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카이는 눈을 감았다.
음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평화로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