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의 무게

준비가 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오래된 후배가 있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까 삼십 년이 넘었다.

그 후배의 아내 역시 같은 과 출신이라

부부 모두와 친형제처럼 지낸다.

세 사람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웃던 밤들이 꽤 있다.


얼마 전 그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는데,

동업 계약서를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에 그 정도 부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도착한 계약서를 펼쳤다.

읽어 내려가는데 눈살이 찌푸려졌다.

후배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항으로 가득했다.

수익 배분, 손실 부담, 계약 해지 조건.

어느 것 하나 균형이 맞지 않았다.


물론 나는 경영 전문가가 아니다.

사업의 현장에서 어떤 역학이 작용하는지,

그 업계의 관행이 어떤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눈앞에 놓인 서면뿐이다.

계약서의 문구, 조항의 균형, 법적 위험.

그게 사업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는 맥락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볼 수 있는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 계약서는 무척 위험했다.

조목조목 짚어 수정안을 보냈다.

이거 가지고 다시 협상을 해보고

합의된 계약서를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동업 상대의 평판이 그 업계에서 그리 좋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된 정보였지만, 알면서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후배는 고맙다고 했다.

일주일쯤 뒤 재협상을 했다며 연락이 왔는데,

새로 만든 계약서가 오히려 더 불리해져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연락했다.

이렇게 계약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문제가 생길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니 순간적으로 흥분한 탓에

그때 말투가 조금 강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배는 알겠다고,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그 뒤로 아무 소식이 없다.

메시지를 보내도 읽기만 할 뿐 답이 없다.

삼십 년 알고 지낸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비슷했다.

약 십여년 쯤 근무하던 법인을 나와 개업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많은 조언이 쏟아졌다.

대부분 조심해라, 그 사람과는 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들이었다.

솔직히 답답했다. 하지만 나름의 확신이 있었고,

결국 내 뜻대로 밀어붙였다.


지금 결과를 돌이켜보면?

그들의 우려 중 절반 이상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마 대부분 그때와 같은 결정을 했을 것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변호사일을 하다 보면 여러가지 조언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간단히 분류를 해보자면

상담료를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너무 속물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정식으로 변호사를 찾아오는 이들은,

대체로 불편한 말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해답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이다.

일종의 각오가 있다고 할까.


반면 무료로 혹은 호의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그렇지 않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쩌면 가깝기 때문에 더,

불편한 이야기는 피하려 한다.

더욱 묘한 것은 상황이 이렇게 되면

조언을 해주는 쪽, 나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점점 열을 올리고,

조언을 무료로 받는 '상대방'은 오히려 점점 불편해한다.

결국 관계 자체가 어긋나버린다.

양쪽 모두 선의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묘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내가 가급적 상담은 유료로 진행하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언이란 결국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조언은 아무리 옳아도 귓전을 스칠 뿐이다.

물론 그 준비가 되어 있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지만.


후배에게 동업 상대의 평판까지 이야기한 건 잘한 일이었을까.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도 괴롭고,

말했는데 듣지 않는 것도 괴롭다.

어느 쪽이든 깔끔하지 않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온다고 해도 아마 또 말할 것 같다.

다만 그 뒤에 오는 침묵에 대해서는

조금 더 담담해지려고 한다.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가만히 생각하면 후배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십여 년 전 내가 그랬으니까.

누군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내가 결심한 일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었다.

그때 나를 말리던 사람들도 지금 나처럼 답답했을 것이다.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친다.

그 후배에게서 연락이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삶은 계속된다.

부디 건승하시길.

내가 우려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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