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습작] 나트랑 1. War Is Over.

그것은 5년에 걸친 전쟁이었다.


물론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거나 폭탄이 터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전쟁 외에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서류와 서류 사이에서, 법정과 법정 사이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죽어갔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제 그 전쟁이 끝났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며칠 전 마지막 송금을 마쳤고, 더 이상 법원에 갈 일도 없다.

지난 5년간 나를 옭아매던 것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무언가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있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했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벌었고, 그들을 위해 살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번 돈은 어디론가 흘러들어갔고, 나는 그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다.


사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나는 여유를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시간도, 돈도, 마음도.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야 했고,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조차 알지 못했다.

단지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만이 있었다.

그것을 끊임없이 조장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들.

오직 나를 통해서 그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그들.


밤마다 나는 어두운 방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떨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심장이 조여들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평온해지기도 했다.

출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폐인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오래전,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하던 시절부터

이미 망가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나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어려운 시험에 도전할 만큼.

하지만 거듭된 실패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힘들게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나는 이미 텅 빈 껍데기였다.




집을 나온 것은 어느 겨울이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가방 하나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작은 원룸을 구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텅 빈 방에 앉아 벽을 바라보았다.

냉장고는 비어 있었고, 세탁기 돌리는 법도 몰랐다.

사십 년 넘게 살아왔으면서 나는 정작 혼자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물리적 거리가 생기자 그동안 얼마나 잠식당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시작한 이 전쟁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점점 단단해졌다.

가끔 떠난 여행이 그것을 더 선명하게 해주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잠들 때.

이상하게도 그때가 가장 평온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였던 사람과의 법적 다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서류를 들고 법원을 오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리인으로 선임한 변호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니.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중요한 기일을 착각하고, 준비해야 할 서류를 빠뜨리고,

결과에 대해 뻔히 보이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왜 하필 저런 변호사를 선택했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이유는 뚜렷이 알 수 없었다. 저런 변호사인지 몰랐으니까.

그런 걸 보면 이 싸움은

처음부터 패배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을이 되자 몸과 마음 모두 한계에 달했다.

초조한 마음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체중은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일주일에 이삼 일은 출근을 하지 못했다.

밤마다 잠들기 전에 다시 그 생각이 찾아왔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어떨까.

예전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어딘가 출구로 느껴졌던 그 생각이,

이제는 실제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늦가을, 드디어 전쟁은 끝났다.


결과는 참담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큰 금액을 더 지불해야 했다.

십여 년간 벌어온 것이 모두 상대편으로 흘러들어갔다.

재정 상태는 십 년 전, 아무것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완벽한 패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담담했다.

어쩌면 이것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는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처럼.

상대방은 철저하게 준비했고, 나는 방심했다.

운도 나빴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그런 것들이 겹쳤다.


며칠 전 마지막 송금을 마쳤다.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화면으로 확인했다.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5년간의 전쟁이, 수억 원의 손실이, 그렇게 숫자 몇 개로 정리되었다.

이상하게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분하지도 않았다.

그저 끝났다는 사실만이 명확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오래된 크리스마스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쟁이 끝났다는 내용의, 어릴 적부터 익숙한 노래.

원한다면 전쟁은 끝난다고, 존레논은 읊조리듯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종전을 선언했다.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것이다.

빼앗길 것도, 지킬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잃을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왜곡되어 있던 삶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나를 옭아매던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내였던 사람, 가족이라 불리던 사람들,

그 관계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상처는 남았다. 재산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대가로 삶과 자유를 되찾았다.


어느 쪽이 승리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돈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완패했다.

하지만 삶 자체를 기준으로 하면,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에게는 내일이 있다.




며칠 전부터 '나트랑'이라는 이름이 자꾸 떠오른다.


작년에 그곳에 간 적이 있다.

이혼소송이 끝날 무렵이었다. 첫 번째 소송. 4년만이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기 위해 그곳을 선택했다.

베트남의 해안 도시. 싼 물가와 따뜻한 기후.

쉐라톤 나트랑, 호텔도 마음에 들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변호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이혼소송이 마무리되었다고.

나는 그 메시지를 보며 울었다.

소리 없이.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안도감이었을까, 허탈함이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새우 요리와 와인을 시켰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시원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새로운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 아내였던 사람의 아버지였다.

대여금 청구. 나는 그런 돈을 빌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류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고 분실했던 인감도장이 찍혀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또다시 법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돈은 아내였던 그 사람이 받아서 사용한 것이었다. 나 몰래.


안도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호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끝없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트랑은 내게 저주받은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이 끝나자 그 이름이 자꾸 떠오른다.


나트랑.


왜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거기에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년 전 그때 빼앗긴 것들. 평화로움. 안도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

그것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유령처럼.


다시 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버려두어야 하는 걸까.


나트랑에 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 질문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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