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습작] 나트랑 6. 다른 곳으로

쉐라톤을 나와 15분을 걸어 노보텔로 가다.

체크아웃 전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다. 화요일 새벽 비행기.

김해공항에 도착하면

오전 중으로 사무실에 출근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첫 주가 끝나기 전에 업무에 복귀하는 것.

그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했다.


며칠 동안 달리고, 수영하고, 책을 읽었다.

과거의 감정들을 털어냈다. 징크스도 깨졌다.

그것은 좋았다.

하지만 털어내기만 했다. 비워내기만 했다. 그 다음이 없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만 들렸다.

나는 생각했다.

트란푸 거리를 달리면서,

인피니티 풀에서 헤엄치면서,

선베드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들.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연한 구상들.

한 달에 한 번 여행을 가겠다는 것.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것.


그것들은 아직 구상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었다. 흐릿한 윤곽만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부산의 내 방. 익숙한 천장.

냉장고에 남아 있는 소주.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

다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고민끝에 휴대폰을 꺼내

항공권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반쯤은 시험 삼아 해본 것이었다.

안 되면 그냥 원래대로 가면 되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변경이 가능했다. 수수료도 없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화요일 새벽에서 토요일 새벽으로.

4일이 더 늘어난다.

해외에서 이렇게 오래 머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온 여행도 아니고, 혼자서.

사치라고 생각했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까.

5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다. 지킬 것도 없다.

내 돈으로, 내 시간을, 내가 쓰는 것이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변경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예약 변경 완료 메시지가 떴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흥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다음은 숙소였다.


쉐라톤에 4일 더 묵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장소를 바꾸고 싶었다.

쉐라톤은 과거를 정리하는 곳이었다.

앞으로를 준비하는 곳은 다른 곳이어야 할 것 같았다.

논리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고다를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노보텔이었다.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쉐라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결정은 내려졌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했다.

계획에 없던 일을. 충동적으로.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추가로 얻은 4일.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의 구상들을 구체화할 것이다.

흐릿한 윤곽에 선을 그을 것이다.

돌아가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 그것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혼자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체크아웃 날 아침.


평소처럼 달리기를 하고 조식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수영을 했다. 1킬로미터.

이제 이 거리가 내 기준이 되었다.


샤워를 하다가 면도기에 베었다.


코 밑에서 피가 났다.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는데.

방수 반창고를 붙이고 모자를 눌러썼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우스웠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일 년 전이었다면 이런 일에도 짜증이 났을 것이다.


로비로 내려가 체크아웃을 했다.


직원이 물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달렸던 그 길. 햇살이 강했다.

캐리어 바퀴가 포장도로 위를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노보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쉐라톤 건물이 보였다.

이제 저곳은 더 이상 저주받은 장소가 아니다.

과거를 정리한 곳.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노보텔에서 보낼 4일.

그 시간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여행. 운동. 혼자서 해내는 삶.

그 구상들에 구체적인 날짜와 숫자를 붙일 것이다.


전쟁은 끝났다.


이제 재건할 시간이다.


노보텔 로비에 들어섰다.

체크인까지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아 있었다.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충분했다. 아니, 이제야 충분해졌다.


트란푸 거리 위로 오토바이들이 지나갔다.


평범한 오후의 풍경. 나는 그 풍경 속을 걸었다.

끊긴 구간을 지나온 사람처럼.

다시 이어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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