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하고도 하루가 더 걸렸다

익숙함이라는 울타리에 대하여

나트랑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쌀국수 사발면을 샀다.

3만 5천 동. 한국 돈으로 약 1,700원.

산 건 여행 온 첫날이었다.


문제는 그걸 먹기까지 사흘하고도 하루가 더 걸렸다는 것이다.


포장을 뜯으면 되는 일이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그 사발면을 보면서도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것들을 먹었다.

호텔 조식. 어제 먹어본 반미.

심지어 사발면도 '신라면', '진라면'

잘 알고 있는 맛들.


왜 그랬을까.


여행지에서도 나는 익숙한 쪽을 선택한다.

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 주저한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아는 것을 고른다.

모험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온 여행인데,

정작 음식 하나 앞에서 발이 묶인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도 그렇다.


여행 넷째 날 아침, 러닝을 마치고 돌아왔다.

6킬로미터 정도를 뛰었다. 배가 고팠다.

인피니티 풀 옆 선베드에 누워 있다가

문득 그 사발면이 떠올랐다.


오늘은 먹어볼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더 생각하면 또 미룰 것 같았다.

물을 끓이고, 봉지를 뜯고, 면을 넣고, 기다렸다.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한국 라면보다 가볍고, 속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혈당도 덜 오르는 느낌이었다.

왜 진작 안 먹었을까 싶었다.

사흘이나 미룬 게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삶에서 중요한 변화들도 비슷했다.


새벽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실제로 운동화를 신기까지.

배우고 싶던 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뒤 실제로 등록하기까지.

그 사이에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했다.

때로는 며칠, 때로는 몇 달, 때로는 몇 년.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은 해볼까, 하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이 들었을 때 바로 움직이느냐, 다시 미루느냐.

그 차이가 쌓여서 삶이 달라진다.


쌀국수 사발면 하나를 먹기까지 나흘이 걸렸다.

그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흘 동안 나는 분명히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익숙함이라는 울타리.

낯선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별것 아닌 두려움.


호텔 방 창문 너머로 나트랑의 바다가 보였다.

여행은 이틀 남았다.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다음 달 여행 계획을 짜는 것.

미뤄뒀던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 그런 것들.


생각해보면 그것들도 마찬가지다.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들.

언제 할까 미루던 것들.

쌀국수 사발면처럼 포장만 뜯으면 되는 것들.


빈 사발을 버리며 생각했다.

오늘은 뭔가 하나를 해냈다.

작은 것이지만 해냈다.

내일은 또 다른 작은 것을 해내면 된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거창한 도약이 아니라, 작은 감각의 확장.

손에 든 것을 한 번 맛보는 용기.


봉지 라면을 살지, 사발면을 더 살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둘 다 조금씩 사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저녁을 가볍게 먹어볼 생각이다.

닭가슴살 하나에 쌀국수 한 그릇.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

익숙함의 울타리를 조금 넓히는 일.

낯선 것을 한 입 맛보는 일.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알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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