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과 떠남 사이의 작은 전쟁
이경규 씨가 출연한 유튜브를 본 적이 있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특히 기억나는 말이 있었다.
누우면 죽는다.
그래서 휴일이든 뭐든 일단 집을 나온다고 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 남았다.
여행지의 아침은 따뜻했다.
정확히는 춥지 않았다. 한국과는 달리.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10 킬로미터를 달렸다.
돌아와서 샤워하고 책을 펼쳤다.
오후에는 수영을 했다.
저녁에는 글을 썼다.
3일 동안 이 패턴이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국내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다.
집에서 나는 무너진다.
눈을 뜬다.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만진다.
뭔가를 주문한다. 배달이 온다.
먹는다. 다시 눕는다.
어느새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때로는 한 주가 사라진다.
문제는 공간이다.
집이라는 공간.
리모컨이 어디 있는지, 배달 앱을 어떻게 여는지,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익숙함이 나를 지배한다.
반면 낯선 곳의 호텔 방은 다르다.
모든 것이 약간씩 낯설다.
불편하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완전히 편하지도 않다.
그 미묘한 긴장감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음식 하나를 먹으려 해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배달을 시켜 먹기엔 절차가 복잡하고 언어가 서툴다.
그래서 걷는다. 걷다 보면 달리게 된다.
달리다 보면 뭔가를 시작하게 된다.
낯선 공간은 나를 능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익숙한 공간은 나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단순한 도식이지만, 이것이 내가 여행을 통해 깨달은 진실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약해지는 장소가 있다.
어떤 이에게 그곳은 회사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부모님 집일 수도 있다.
특정 카페나 술집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내 집이 그렇다.
집에 들어서면 긴장이 풀린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다. 무장해제에 가깝다.
방어선이 무너지는 느낌. 하루를 계획하겠다는 의지가 흐물흐물해진다.
결심이 사르르 녹는다. 손은 자연스럽게 배달 앱으로 향한다.
오랜 시간 그 패턴에 굴복해왔다. 의지력의 문제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의지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환경을 바꾸는 편이 빠르다. 싸움터를 바꾸는 것이다.
집에서 나는 진다. 그렇다면 집을 떠나면 된다.
떠남은 도피가 아니다. 전술적 후퇴다.
전쟁에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
불리한 지형에서는 물러나고, 유리한 곳에서 싸우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약해지는 공간에서 억지로 버티는 것보다,
내가 강해지는 공간으로 옮기는 편이 낫다.
집은 쉬는 곳이다. 자는 곳이다.
그 이상의 역할을 맡기지 않는 편이 좋겠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면 집을 나서야 한다.
그것이 사무실이든, 카페이든, 아니면 다른 도시의 호텔이든.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마음의 평온을 지킬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익숙함의 포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때로는 떠나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계획을 세웠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반드시 해외일 필요는 없다.
국내의 낯선 도시도 괜찮다.
핵심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
왜 굳이 돈을 써가며 집을 떠나느냐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지, 나는 이제 안다.
집에서 나는 지지만, 길 위에서 나는 이긴다.
그렇다면 선택은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