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물리치료 현장에서 과거의 유산을 재발견하다
오랫동안 내 몸의 왼쪽은 내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왼쪽 어깨가 처지고, 왼쪽 골반이 틀어지고, 왼쪽 허리가 욱신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비만은 친구처럼 따라다녔다.
군대에서 잠깐 체력이 붙었지만,
사회에 나오니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직업을 갖고 나서는 더 심해졌다.
앉아서 서류를 보고, 앉아서 사람을 만나고, 앉아서 생각하는 일이었으니까.
서른 후반 무렵, 몸이 바닥을 쳤다.
체중은 90킬로그램을 넘겼고, 허리는 버틸 수 없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이 무거웠다.
그때 우연히 어떤 신체 교정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특이했다.
천천히 몸을 늘이고, 비틀고, 눌렀다. 복잡한 기구는 없었다.
맨손으로 바닥에 누워 동작을 따라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왼쪽 어깨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 통증이 줄었다.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졌다.
몸이 살아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관계 속에 갇혀 있었는지,
그 관계가 나를 어떻게 옥죄고 있었는지.
몸이 무거울 때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문제들이
눈앞에 선명해졌다.
그때 몇몇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해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다.
점점 상업화되었다.
고가의 과정을 권유받았다
무언가를 맹신하도록 유도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왠지 내가 그 수단으로 이용당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깊은 고민 끝에 결국 발길을 끊었다.
좋았던 기억과 찝찝한 기억이 뒤섞여,
오랫동안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다.
최근 병원에서 운동처방, 도수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솔직히 회당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전문 물리치료사가 체계적으로 몸을 교정해준다.
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치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이 동작, 어디서 해본 적이 있다.
이 스트레칭, 분명 익숙하다.
치료사가 내 골반을 누르며 다리를 움직이는 방식.
어깨를 풀기 위해 팔을 특정 각도로 올리는 동작.
20년 전 그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의 창시자가 물리치료 계통 출신이었다고.
결국 핵심은 같은 것이었다.
신체 구조에 대한 이해, 근막과 근육의 연결, 자세 교정의 원리.
신비로운 언어로 포장했을 뿐, 본질은 과학이었다.
20년 만에 퍼즐이 맞춰졌다.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몸이 회복되면 정신이 따라온다.
통증이 사라지면 생각이 맑아진다.
허리가 펴지면 마음도 펴진다.
예전에는 몸의 회복 이후 관계를 정리할 용기가 생겼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을 다니며 몸 상태가 나아지자,
그동안 미뤄뒀던 문제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어떤 관계들은 '공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상대방이 베푼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구조.
처음에 작은 도움을 주고,
나중에 열 배 스무 배를 거둬가는 방식.
내가 당연히 갚아야 할 빚처럼 만드는 그 기술.
몸이 무거울 때는 그런 관계를 끊어낼 힘이 없었다.
귀찮았고, 피곤했고, 생각하기 싫었다.
그냥 흘려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절할 수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돌아설 수 있다.
삶을 지탱하는 축은 결국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육체다.
건강한 몸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둘째는 정신이다.
때때로 일상을 벗어나 환기해야 한다.
셋째는 지식이다.
배움을 멈추면 사람은 늙는다.
이 세 가지 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단연 몸을 돌보는 일이다.
몸이 살아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해야 배울 수 있고,
배워야 삶이 깊어진다.
치료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20년 전에 시작된 여정이 지금 여기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때 배운 동작들이 껍데기를 벗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포장만 바뀔 뿐이다.
오늘도 치료를 받고 나왔다.
허리가 한결 가볍다. 걸음이 편하다.
바깥 공기가 차갑다. 겨울이 왔다.
하지만 몸이 따뜻하면 겨울도 버틸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깨닫는다.
몸이 살아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끊어야 할 관계, 지켜야 할 원칙, 나아가야 할 방향.
그 모든 것은 튼튼한 육체라는 기초 위에서만 선명해진다.
병원비가 아깝지 않다.
이것은 투자다.
나 자신에게 하는, 가장 정직한 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