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끝내 놓지 못한 것

제로베이스로 돌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

아침에 출근하니 사무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변호사님, 혹시 작년에 상담 오셨던 분 기억하세요? 남편분이랑 같이 오셨던..."


처음에는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사무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기억이 났다.

부동산 투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부부.

아내가 먼저 혼자 왔고, 나중에 남편과 함께 다시 왔었다.


그 남편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그 부부의 사정은 이랬다.


부동산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었다.

대출을 끼고 산 것들이었다.

한동안은 괜찮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꺾이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매달 나가는 이자가 천만 원이 넘는데, 들어오는 수익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해결책은 있었다.

회생이나 파산절차를 통해 부동산을 정리하고, 빚을 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됐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몇 번의 전화통화 끝에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언젠가 부동산 경기가 다시 좋아지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지금 팔면 손해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했다.

어디선가 들은 방법이 있다며,

법인을 만들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건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걸 다 포기하라는 겁니까?"


결국 그는 화를 내며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이런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바다에 빠진 사람을 생각한다.


배가 침몰했다. 헤엄쳐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육지가 보인다.

하지만 양손에는 황금 덩어리가 들려 있다.

평생에 걸쳐 모은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쥐고 있으면 헤엄을 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황금을 놓고 살거나, 황금을 쥔 채 가라앉거나.


머리로는 안다. 일단 살아야 다음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손이 펴지지 않는다.

평생을 바쳐 이룬 것이니까.

언젠가 이 황금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왔으니까.




그분은 결국 손을 펴지 못했다.


혼자서 해결해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고 한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부동산 경기가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

그때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버틸 여력이 없다면 그 희망은 의미가 없다.

일단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도 있는 법이니까.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비슷한 상황을 자주 본다.


당사자에게는 분명 죽을 만큼 힘든 일이다.

그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왜 하필 나인가 싶어 밤잠을 설치는 기분을 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두 번은 찾아온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다들 말을 안 할 뿐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내 잘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미 벌어진 일에 매달려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친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영면하시기를 빈다.


착잡한 아침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늘도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곧 그분의 아내가 사무실을 찾아온다.

남겨진 문제들을 정리해야 하니까.

삶은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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