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새벽
새벽 6시 10분, 황령산 초입에 섰다.
1월의 공기는 차갑다기보다 날카로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
등산로 입구의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내 입김이 희뿌옇게 퍼졌다가 사라졌다.
중이염과 허리 통증으로 두 달 가까이 운동을 쉬었더니,
오랜만에 움직이는 다리 근육이 투덜거렸다.
최근 수영 대신 산을 택한 것은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물속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휴대폰에 녹음하는 일.
요즘 유행하는 음성 일기라는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오르막이 시작되자 숨이 거칠어졌다.
헐떡이면서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오늘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화면에 글자가 떴다.
'오늘부터 다시 온통을 시작한다.'
다시 말했다.
"허리가 많이 나아졌다."
화면에는
'허리가 마니 나아졌다'라고 찍혔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최신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꽤 비싼 건데.
짜증이 올라왔다.
열 발짝쯤 더 올라가다 문득 깨달았다.
기계 탓이 아니었다.
숨이 차니까 자연스레 목을 앞으로 빼고,
등을 구부린 채 웅얼거리고 있었다.
거북이 자세. 그 상태로 읊조리면 발음이 뭉개질 수밖에 없다.
등을 펴고 턱을 당겼다.
곧게 선 채로 천천히,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화면에 정확히 찍혔다.
기계는 처음부터 제대로 듣고 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낸 쪽은 나였다.
기계조차 거부하는 구부정한 진심이라니. 조금 웃겼다.
생각해보면 허리가 망가진 것도 비슷한 이치였다.
작년 가을에 소파를 샀다.
거실에 소파 하나쯤 있어야 어른 사는 집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좋았다.
저녁마다 푹신한 쿠션에 파묻혀 책을 읽고,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글을 썼다.
소파가 없던 시절에는 방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지냈다.
오래 있으면 엉덩이가 배기고 등이 뻐근해져서 자연스레 일어나 움직였다.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거나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거나.
불편함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소파는 달랐다. 편안함이 몸을 붙들어놓았다.
한 자리에 두세 시간씩 앉아 있어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척추는 매일 조금씩 굽어갔고,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등 한가운데를 날카로운 것이 찔렀다.
그날 이후로 통증이 시작됐다.
그 뒤로는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의식했다.
서서 일하고, 자주 걷고, 눕거나 서거나 둘 중 하나를 택했다.
창의적인 생각도 걸을 때 더 잘 떠올랐다.
책상 앞에서 모니터를 노려봐도 한 줄도 못 쓰다가,
집 앞 골목을 한 바퀴 돌고 오면
갑자기 문장이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정상 근처에서 잠시 멈췄다.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산 시내가 햇살 속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고층 건물 유리창에 빛이 부딪혀 반짝였다.
저 아래 어딘가에 내 거실이 있고,
아무도 앉지 않은 소파 위로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소파를 버릴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아직 버리지 않았다.
가끔은 거기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다만 삼십 분이 지나면 일어난다. 타이머를 맞춰놓는다.
(삼십 분. 라면 끓이는 시간의 여섯 배다.)
좀 우습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산길에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등을 곧게 세우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한 글자씩 끊어 말하자 기계는 군말 없이 받아 적었다.
등을 세워야 숨쉬기가 편하고,
바른 자세로 말해야 기계가 알아듣는다.
구부정하게 전하는 말은 상대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다.
뭉개진 발음처럼 왜곡되어 전달되거나, 아예 잡음 취급을 당하거나.
물론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틀렸을 수도 있다.
오늘 산을 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뿐이다.
내일은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일도 이 산에 오를 생각이다.
기계에게 다시 말을 걸어볼 것이다.
제대로 된 자세로.
뭐, 못 알아들으면 다시 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