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며 순서를 매기다

삶에도 차례라는 것이 있다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황령산에 올랐다.

사흘째다. 새벽 6시 10분. 영하 1도.


오늘은 자세 대신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앞뒤. 삶의 앞뒤에 관한 것이었다.



등산로 초입의 흙길을 밟으며 걸었다.

밤새 내린 서리가 낙엽 위에 하얗게 앉아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들이쉬면 찬 공기가 콧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폐 안쪽이 서늘해지는 느낌.

몇 발짝 더 오르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찬 공기와 따뜻한 몸이 부딪치는 지점.

그 경계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오늘 10시에 약속이 있었다.

운동을 줄이고 서둘러 내려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게 바로 문제다. 뭐가 먼저인지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산에 오르면 이런 생각이 잘 된다. 평지를 걸을 때는 잘 안 되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는 왠지 머리가 맑아진다)

결론은 간단했다.


몸이다.


통장 잔고가 아무리 두둑해도 허리가 아프면 소용없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잠을 못 자면 멍청해진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있다.


10시 약속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산을 오르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 더 올랐다.



봉수대까지 2.3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거기까지 가지는 않기로 했다.

아침에 너무 쏟아버리면 오후에 힘이 빠진다.

(예전에 한번 새벽에 10킬로미터를 뛰고 출근했다가 오후 내내 졸았던 적이 있다.

회의 중에 눈이 감겼다. 그 뒤로는 아침 운동의 강도를 조절하게 됐다.)


돌아서서 내려오는 길.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다.

등산로 위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내 그림자도 그 사이에 섞여 함께 늘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앞뒤를 잘못 매기고 살아온 게 아닐까.


일이 먼저였다. 돈이 먼저였다.

몸이 아파도 약을 먹고 버텼다.

그렇게 해서 뭘 얻었는지 잘 모르겠다.

통장 잔고는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했고, 몸은 조금씩 무너졌다.




하산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7시 반. 현관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소파 위에 빛이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었다.

거기 앉고 싶은 유혹이 잠깐 들었지만, 참았다.


샤워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다.

새벽 산에서 얼었던 손끝이 서서히 녹았다.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50대 남자의 얼굴. 눈가에 주름이 꽤 늘었다.

언제 이렇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조금씩 늘어났겠지.

주름도 그렇고 다른 것들도 그렇고. 매일매일,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또 새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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