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인에게 하듯, 나에게도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아침이었다.
창밖으로 희뿌연 김이 서렸다.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며칠 전 들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오늘 너 자신에게 뭘 잘해줄 거냐고.
그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필요하면 옷을 사고, 때가 되면 운동을 한다.
그게 잘해주는 것 아닌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연애 초기의 내가 떠올랐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사람은 이상해진다.
지나가다 꽃집이 보이면 한 송이쯤 사게 된다.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캡처해서 보낸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혼자 먹기가 아까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친해지고 나면 그런 것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랑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무덤덤해진다.
경상도 사람들이 말하는 부부간, 연인간의 '정'이라는 게 아마 그런 것일 테다.
나쁜 건 아닌데, 뭔가 빠진 느낌.
그날 이후로 가끔 생각한다.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꼭 그랬다는 것을.
밥 먹고, 운동하고, 기억나면 뭔가 사고.
유지하고 있으니 됐지. 살아 있으니 됐지.
오래 사귄 연인에게 하듯,
나에게도 그냥 무덤덤하게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와 가장 오래 함께한 존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하루도 떨어진 적이 없다.
그런데 정작 연애 초기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대한 적이 있던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나 자신과 막 연애를 시작한 것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물어본다.
잘 잤어? 뭔가 먹고 싶은 거 있어?
지나가다 좋은 것이 보이면 사준다.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된다.
연애할 때도 그랬으니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좀 민망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조금씩 괜찮아 지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배신당할 염려가 없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법을 잊고 있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 아침, 나는 나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따뜻한 게 좋겠다고.
그래서 국물을 끓였다. 별것 아닌 일이다.
이게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연애가 늘 그렇듯이.
하지만 적어도 오늘 아침,
나는 나에게 조금은 잘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