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의 시간

일요일 오후, 석불사에서

일요일 오후, 만덕동 산길을 올랐다.


경사가 가팔랐다.

허리가 좋지 않아 의사에게 당분간 뛰지 말라는 말을 들은 터라

천천히 걸었다.

숨이 찼다. 다리가 무거웠다.

중간쯤 왔을 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부산 시내가 저 아래 펼쳐져 있었다.

건물들이 성냥갑처럼 작았다.

내가 사는 곳, 일하는 곳, 돌아가야 할 곳.

전부 저 안에 있었다.

여기서 보니 별것 아닌 듯했다.


다시 올랐다.


석불사는 '병풍암'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이 동네가 BTS 정국의 고향이라 '정국 산책 코스'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절도 그 코스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만덕동 소년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전,

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절 입구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된 출입구가 독특했다.

암벽 사이로 난 좁은 길.

어딘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규모는 크지 않았다. 아담했다.


그런데 그 뒤로 보이는 것들.


암벽에 새겨진 불상들이었다.

고개를 젖혔다.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 젖혔다. 관음보살과 나한들의 얼굴이 보였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1930년대에 어떤 승려가 이곳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장비도 없던 시절이다.

암벽 위로 올라가 정을 들고 한 땀 한 땀 새겼을 것이다.

한 번 잘못 깎으면 돌이킬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날들이 걸렸을까.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90년이 지난 지금, 그 미소가 여기 남아 있다.


바위는 비바람에 닳았을 것이다.

이끼가 끼고, 갈라지고, 색이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미소는 선명했다. 닳지 않은 듯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절 안쪽 어디선가 목탁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리듬. 누군가 불공을 드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불자가 아니어서 기도하는 법을 모른다.

그냥 서서 들었다.

암벽 사이로 소리가 울렸다.

퍼졌다가 사라졌다. 다시 울렸다.


그때 깨달았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게 어디론가 갔다.

숨이 찼던 것, 허리가 뻐근했던 것.

내일 처리해야 할 서류들,

이번 주 안에 확인해야 할 것들.

소파에 누워 있을 때는 그것들이 천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하려 해도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은 없었다.

남은 건 목탁 소리와 바위와 불상의 미소뿐이었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쉬는 건지 그냥 멈춘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웠다.

눕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을 켜거나 끄거나 했다.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 무거웠다.

이틀을 누웠는데 오히려 더 피곤했다.

몸은 쉬었는데 무언가가 쉬지 못한 느낌.

뭐가 잘못인지 몰랐다.


관음보살의 미소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지난주 소파에서 천장을 보던 일이 떠올랐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얀 페인트칠뿐이었다.

여기에는 미소가 있다.

90년 전에 누군가 새겨놓은 미소가.


어쩌면 쉼이란 비어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바위에 새겨진 미소처럼 오래된 것.

나보다 먼저 있었고, 나보다 오래 남을 것.

그런 것 앞에 서면 내 일주일쯤은 별것 아닌 게 된다.




산을 내려왔다.

아까 올라올 때 성냥갑처럼 보였던 건물들이 다시 커졌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에서 무슨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구 노래인지는 모르겠다.

아까 절에서 들은 목탁 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다음 주말에도 어딘가로 갈 것이다.

어느 절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부산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절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붉은 빛이 번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90년 전 그 승려도 이 노을을 보았을 것이다.

정을 내려놓고, 허리를 펴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쩌면 그도 웃고 있었을지 모른다.

바위에 새긴 것처럼.



20260125_154021.jpg 2026. 01. 25. 석불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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