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과 기다림 사이에서
요즘 자꾸 실내 자전거를 사고 싶다.
사도 되는 물건이다. 합리적인 이유도 있다.
그런데 사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겨울이라 로드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한파주의보가 뜬 새벽에 자전거를 끌고 나갈 용기는 없고,
노면도 얼어붙어서 사고 위험이 크다.
허리 통증 때문에 러닝도 어렵다.
의사가 사이클을 권했다.
앉아서 하는 유산소 운동이라 허리와 무릎에 부담이 적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탈 수 있는 실내용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이 갔다.
쓸만한 건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못 살 것도 없다.
그래서.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금은' 사지 않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아마 곧바로 결제했을 것이다.
생각이 났을 때 바로 행동하는 것이 추진력 있는 태도라고 믿었다.
고민은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사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산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 있다.
한두 번 쓰고 방치된 것들.
살 때는 분명히 필요했는데,
막상 손에 들어오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들.
운동 기구, 주방용품, 전자기기.
돌이켜보면 그랬다.
물건을 사는 순간보다 사기 직전이 더 짜릿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그 순간.
막상 사고 나면 그 짜릿함은 금방 사라졌다.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절반으로 줄고,
일주일이 지나면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또 다른 물건을 찾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올해 초에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매달 혼자 여행을 가기로 했다.
거기서 지난달을 돌아보고,
다음 달을 계획하기로 했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거나,
돈이 드는 일을 벌이고 싶을 때는 일단 메모장에 적어둔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다시 생각한다.
일단 한번 결정되면 다음 여행때까지는
그것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규칙을 아직 한 번도 실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획만 세우고 미루다 보니 벌써 1월 말이다.
오늘로부터 16일 후, 드디어 첫 여행을 떠난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 자전거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며칠 전이다.
다음 여행까지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한 달이면 다시 여행을 떠나니까.
진짜 필요한 것은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필요하다.
충동이었던 것은 그 사이에 잊힌다.
놀랍게도 하루가 지나자 그 욕구가 한풀 꺾였다.
여전히 갖고 싶긴 하지만, 당장 사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은 사라졌다.
아직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규칙이 벌써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기다림에는 묘한 힘이 있다.
다음 여행까지 기다리자. 이렇게 정해두면
그 사이에 내가 정말로 그 물건이 필요한지,
아니면 그냥 사고 싶었던 건지 구분할 시간이 생긴다.
결제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내려놓을 여유가 생긴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이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했다.
결정을 미루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섣부른 결정이 만들어낸 후회들이 쌓여 있다.
빠른 행동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6일 후, 첫 여행지에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
그때도 그 자전거가 필요하다면 사면 된다.
여전히 간절하다면 그건 진짜 필요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잊혔다면 충동이었을 뿐이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세상은 끝나지 않는다.
그 물건은 도망가지 않는다.
세일이 끝나도 비슷한 기회는 또 온다.
결정을 미루는 것이 나약함이 아닐 때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규칙이 이미 효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