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의 쓸모

아무도 듣지 않는 말.

유튜브를 보다가 어떤 고민 상담 영상에서 멈췄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여성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자기 이야기를 잘 안 들어준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일, 직장에서 있었던 일, 속상했던 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남편은 건성으로 듣거나 금방 피곤해한다.

다른 집 남편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우리 남편만 유독 그렇다.

남편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됐고,

동시에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말했다.

친구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그날 있었던 일을 쏟아냈다.

상대방이 들어주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래, 네가 맞아."

"정말 힘들었겠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거야." 그런 말들.


상대방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래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지친다.




예전에 대학 동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그 친구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인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다.

룸메이트는 매일 퇴근하면 직장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상사가 어떻고, 동료가 어떻고,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친구는 처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힘들어졌다.

그 회사 사람들을 모른다.

누가 누군지, 왜 그게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맥락을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직장생활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들어야 했다.

공감해줘야 했다.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했다.


친구는 말했다.

"그거 진짜 힘들었어. 연구실에서 돌아오면 또 다른 피로가 시작되는 느낌이었어."


맥락 없이 누군가의 하루를 매일 떠안는 일.

생각보다 무거운 노동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대부분 말하는 쪽은 모른다.

듣는 쪽만 안다.




그래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한다.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대신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말을 시작한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말.

나 자신에게 하는 말.


처음에는 어색했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중얼거리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며칠 지나니 익숙해졌다. 오히려 편해졌다.

상대방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내 속도대로 말할 수 있었다.

중간에 멈춰도 되고, 같은 말을 반복해도 됐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냉정한 목소리.

"그게 정말 그 사람 잘못이야?"

"네가 좀 과민하게 반응한 건 아니야?"

"지금 중요한 게 그거야?"


처음에는 불편했다.내 목소리임에도.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결국은 그게 더 도움이 됐다.

친구에게 말하면 대부분 내 편을 들어준다.

기분은 좋아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혼잣말을 하면 달랐다.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요즘은 녹음 대신 다른 방법을 쓰기도 한다.

AI에게 말을 건다.

내 이야기를 정리해서 입력하면, 기계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뭔가요?"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뭘까요?"

사람이었다면 조심스러워서 묻지 못했을 질문들이다.


결국 같은 원리다.

밖으로 꺼내야 정리가 된다.

머릿속에만 두면 계속 맴돈다.

말로 하든, 글로 쓰든, 기계에게 입력하든,

일단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해결책을 원한다고 말한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

혹시 다른 답이 있을까 싶어서.

내가 원하는 답을 해줄 사람을 찾아서.


영상 속 새댁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남편에게 해결책을 원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오늘 힘들었구나, 고생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매일 한 사람에게만 걸면 무거워진다.

듣는 사람도 지치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 실망하게 된다.

기대한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해지니까.


예전에 읽었던 책, 심승현 작가의 <<파페포포 투게더>>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면

외로움이 떠나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떠나간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그 녀석과 열심히 싸우고 있을 테니까."




오늘도 아침에 녹음 버튼을 눌렀다. 삼십 분쯤 혼자 말했다.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머릿속이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 할 일이 명확해졌다.

어제 마음에 걸렸던 일도 별것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잣말의 좋은 점이 있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상처받을 사람이 없다.

욕을 해도 되고, 불평을 늘어놓아도 된다.

그러다 보면 감정이 가라앉는다.

그 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면 다른 관점이 보인다.


자기 문제는 결국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

남에게 기대면 기댄 만큼 빚이 생긴다.

정서적인 빚. 그 빚은 관계를 무겁게 만든다.


녹음 파일은 다시 듣지 않는다.

들을 필요가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밖으로 꺼내는 순간 절반은 해결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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