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라는 이름의 거리
새벽에 사무실 문이 열릴 일은 없다.
직원들 출근 시간은 아홉 시였고,
나는 일부러 두 시간 일찍 나와 혼자 서류를 정리하곤 했다.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시 반쯤 되었을 때, 문이 열렸다.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입사한 지 반년쯤 된 젊은 친구였다.
평소 지각이 잦아 담당 사무장에게 몇 번이나 지적을 받던 친구였는데,
이런 날에는 새벽같이 나타났다.
"대표님, 할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의자를 돌려 그를 마주 보았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대뜸 말했다.
"급여를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자취를 시작했는데, 방값을 내고 나니 생활이 어렵습니다."
며칠 전 담당 사무장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같은 요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사무장은 나름대로 잘 타일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대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노려 직접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올려달라는 금액이 현재 급여의 사분의 일이 넘었다.
경력과 업무량을 고려하면 지금 받는 돈도 낮은 편이 아니었다.
그 금액이면 자기 상급자보다 더 받게 된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절차를 무시한 압박이었다.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한 초기에, 나는 이런 원칙을 세웠다.
"할 말 있으면 해라."
위계 때문에 말을 못 하는 조직이 싫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직급에 막혀 사라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문을 열어두었다.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부담 갖지 말라고.
처음에는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이 편하게 의견을 냈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나는 내 방식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간 관리자가 있는데,
그를 건너뛰어 직접 대표에게 오는 사람이 늘었다.
상사에게 꾸중을 들으면,
그날 저녁 내게 찾아와 "부당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했다.
상대방의 입장은 쏙 빠져 있었다.
문을 열어둔 것이 아니라, 문을 없앤 것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내게 와서 말했다.
"대표님, 운전면허 학원비를 지원해주실 수 없을까요?"
내근직 직원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지금은 업무 때문에 택시를 타는데, 제가 면허를 따면 직접 운전할 수 있잖아요.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 아닐까요?"
업무 때문에 택시를 탄다고 했지만,
우리 사무실 특성상 외근이 잦은 편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고,
그때마다 택시비는 법인에서 지급했다.
게다가 이 친구는 차를 살 계획도 없었다.
면허만 따면 무슨 수로 운전을 하겠다는 것인지.
창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런 부탁을 직속 상사에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한마디로 끝났을 것이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상사에게는 말하기 껄끄럽고,
대표는 "할 말 있으면 해라"라고 했으니,
대표에게 직접 오는 것이다.
나는 거절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직원이 아니었다.
그런 요청이 가능하다고 느끼게 만든 구조가 문제였다.
나중에 중간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대표님이 너무 열어두시니까, 저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직원들이 저희 말은 안 듣고, 불만 있으면 바로 위로 올라가버려요."
맞는 말이었다.
"할 말 있으면 해라"는 좋은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말이나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해라"는 뜻이 아니었다.
중간 단계를 거치고,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체계다.
체계는 관료주의가 아니다.
서로를 보호하는 거리다.
문을 열어두는 것과 문을 없애는 것은 다르다.
문이 있어야 열 수 있다.
그 뒤로 방식을 바꾸었다.
의견이 있으면 먼저 직속 상사와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 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불만을 표시하는 직원도 있었다.
"예전에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조직이 안정되었다.
중간 관리자들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요청도 줄었다.
적정한 거리가 생긴 것이다.
새벽에 찾아와 급여 인상을 요청했던 그 직원은
결국 얼마 뒤 회사를 떠났다.
좋게 끝나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서로 불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은 열려 있어야 한다.
다만 문이 있어야 열 수 있다.
열린 문 앞에서의 절차가,
문이 없는 곳에서의 혼란보다 낫다.
그것을 배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