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하면 실패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새벽 알람이 울릴 때마다 같은 계산을 했다.
최소 몇 시간은 잤나. 최소한은 채웠나.
살면서 하한선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했다.
최소 몇 시간은 자야 한다.
최소 몇 끼는 먹어야 한다.
최소 얼마는 벌어야 한다.
그런 숫자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실패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상한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코칭을 받다가 이런 질문을 들었다.
회복하는 날에는 어디까지만 하기로 정해두었느냐고.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회복하는 날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아닌가.
몸이 허락하는 한 움직이고,
체력이 되는 한 걷고,
시간이 있는 한 일하는 것.
아니라고 했다.
회복하는 날에는 오히려 덜 해야 한다고.
최대 만 보까지만 걷기.
에너지가 낮으면 스트레칭만 하기.
선을 긋지 않으면 결국 또 무너진다고.
돌이켜보면 나는 늘 '덜 하면 실패'라는 공식으로 살았다.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그 이상을 해야 했다.
계획보다 적게 하면 자책했다.
조금이라도 여력이 남으면 더 채워 넣었다.
빈 시간이 생기면 불안했다.
쉬는 것조차 뭔가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몸이 기억하고 있다.
무리하고, 부서지고, 회복하고, 다시 무리하는 순환.
그게 반복될수록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많이 하면 규칙 위반'이라는 개념은 처음이었다.
과식하면 안 된다는 건 안다.
과음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과로나 과욕에는 그런 기준이 없었다.
넘쳐도 괜찮다고,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 칭찬받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더 하면 잘한 거라고 배웠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들보다 오래 앉아 있고,
남들보다 많이 해내면 성실하다고 들었다.
그 인정이 좋았다.
그래서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제 아침, 운동복을 입고 현관에 섰다가 그냥 벗었다.
몸이 무거웠다.
예전 같으면 억지로 나갔을 것이다.
오늘 안 하면 내일은 더 힘들다고,
여기서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대신 거실 바닥에 앉았다.
창문 너머로 새소리가 들렸다.
어깨를 천천히 돌렸다. 열 번.
목을 좌우로 기울였다.
그게 전부였다.
이상하게 죄책감이 없었다.
정해둔 선 안에 있었으니까.
요즘은 일이 잘 풀리는 날에도 약속한 시간이 되면 덮는다.
내일 할 일을 오늘 당겨서 하지 않는다.
더 할 수 있어도 일부러 안 한다.
처음에는 찜찜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을 때, 몸이 달랐다.
다음 날 컨디션이 좋았다.
피로가 누적되지 않았다.
일주일 단위로 보면 오히려 더 많이 해낼 수 있었다.
멈춤이 바닥을 막아주고 있었다.
오늘도 할 일 목록 옆에 작은 메모를 붙여둔다.
여기까지만.
더 할 수 있어도 여기까지만.
남은 건 내일의 나에게 남겨둔다.
그게 선물인지 도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