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면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에서 과거 내 자신의 모습을 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을 샀다. 플레이스테이션용.
나온 지 꽤 된 게임이라 가격이 싸길래 별생각 없이 구입했다.
원래 게임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가끔 생각날 때 켜는 정도다. 그냥 궁금해서 산 것이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
그런데 부당한 명령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거부하는 안드로이드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그중 하나가 보모 안드로이드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술에 취해 아이에게 하는 짓을, 안드로이드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고 결국 명령을 거부한다.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게임을 중간에 껐다.


화면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 장면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를 잃고, 가장 가까운 존재를 망가뜨리는 그 남자의 모습에서
나는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때린 건 아니다.
학대한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10년 가까이 같은 일을 반복했다.


퇴근 후의 시간이 두려웠다.
하루 종일 사건들을 처리하고, 사람들의 분쟁과 고통을 마주하고,
저녁이 되어 사무실 불을 끄면 텅 빈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술을 마셨다.
취해서 유튜브를 켜놓고 멍하니 누웠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고통 속에서 눈을 떴다.
후회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또 반복했다.


그렇게 거의 10년을 살았다.


얼마 전, 지우기 전에 우연히 당시의 일기들을 다시 봤다.
거기에는 한 문장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트레스가 쌓이고 힘이 드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하루 종일 남의 문제를 풀어주고 돌아온 저녁,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술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매일 같은 선택을 했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학대하는 쪽도, 학대받는 쪽도 모두 나였다.
가해자이자 피해자.
한 사람 안에 둘이 들어앉아 매일 밤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이대로 가면 파멸이라는 걸 알았다.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왜 못 벗어났는지, 돌이켜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당장 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도 출근할 수 있었고,
사건도 처리할 수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서서히 무너지는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기울어지는 건물에 살면서
지진이 날 때까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지진은 건강의 형태로 왔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여기저기 아팠다.
잠을 자도 피곤했고, 깨어 있어도 피곤했다.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의사가 말하는 수치들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동시에 몇 가지 상황들이 정리되었다.
오래 끌어온 일들이 하나둘 매듭지어졌다.
그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고통이
오히려 나를 멈춰 세웠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확고해진 건 그 무렵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힘든 건 안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분쟁 속에 있다가
저녁에 홀로 남겨지는 그 시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도 안다.


하지만 네가 매일 밤 하는 일은 해결책이 아니다.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하면 빨리 나오는 게 너에게 좋다.


게임 속 안드로이드는
학대받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명령을 거부했다.
프로그램된 존재조차
부당함 앞에서 멈출 줄 알았다.


나는 10년이 걸렸다.




밤 10시다.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불을 끈다.


그 게임 속 장면 하나가
수년간의 나를 관통했다.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
하지만 봐야 했던 장면.


화면 속 폭력에 소름이 돋은 게 아니라,
거울처럼 비친 내 과거에 소름이 돋았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쉽지는 않았지만,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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