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무서웠던 사람

그때, 몸이 보낸 신호

한때 나는 앉는 것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서른 초반, 시험 준비를 하던 시절이다.

1차에 붙고 2차를 앞두고 있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면 맨 앞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점심은 김밥 한 줄. 하루 용돈 5천 원.

저녁까지 버티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나왔다.

하루에 열두 시간, 때로는 그 이상을 그 의자에서 보냈다.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도서관 건물의 생김새는 지금도 선명한데,

안에서 누구와 마주쳤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게 도서관이란 그런 곳이었다.

사람은 없고, 의자만 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많이 움직여서 체중이 문제되지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자 달라졌다.

앉고, 먹고, 또 앉았다. 살이 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허리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꺾이는 감각이 왔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허리부터 양쪽 다리까지 전류처럼 통증이 퍼졌다.

반쯤 일어선 자세로 멈췄다.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다.

두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가락 끝이 하얘질 만큼 세게 잡았는데도 몸이 펴지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다가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구급차를 탔는지, 택시를 탔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하얀 천장. 형광등이 두 개 켜져 있었다.


수술은 하지 않았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니 며칠 뒤에 걸을 수는 있었다.

의사는 당분간 오래 앉지 말라고 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앉지 말라니.


병원에서 나오는 길,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으려다가 멈칫했다.

플라스틱 의자가 갑자기 낯설어 보였다.

저기 앉으면 또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느낀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공포라는 단어가 가장 가깝다.

의자가 무서워진 것이다.




그 무렵, 도서관 근처에 작은 명상센터가 하나 있었다.


원장은 나와 동갑이었다.

가난한 수험생의 사정을 알았는지, 수업료를 거의 받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부족한 비용을 직접 부담했다고 한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바닥에 누워 몸을 늘이고 비틀고 호흡했다.

특별한 장비는 없었다. 맨바닥과 내 몸뿐이었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 하기도 벅찼다.

몇 주가 지나자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수월해졌다.

머리가 맑아졌다. 공부가 잘 되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다가,

오후 늦게 그곳에 가서 한 시간 몸을 움직였다.

가끔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도 했다.

수험 생활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해, 시험에 떨어졌다.


어머니가 그곳에 찾아갔다.

공부는 안 하고 그런 걸 해서 시험에 떨어졌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 한 시간이 없었다면 나머지 열한 시간을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발길을 끊었다.

얼마 뒤, 그 공간은 문을 닫았다.




어머니의 허리도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아프다고 했다.


어머니가 사십 대 중반에 처음으로 허리수술을 받던 날,

나는 수술실 앞 복도에 앉아 있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났다.

리놀륨 바닥에 형광등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장갑 낀 손에 스테인리스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 위에 피가 묻은 뭉클뭉클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잘라낸 디스크 조직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것을 내 눈높이로 가져왔다.


설명은 들리지 않았다.

접시 위의 붉은 살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이 방금 전까지 어머니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던 것이라는 사실만이 남았다.


어머니는 이후로 허리 수술을 두 번 더 받았다.

지금은 등이 ‘ㄱ’자로 굽었다.

나는 어머니의 체질을 닮았다고 의사가 말한 적이 있다.


수술실 복도에서 본 그 장면은 이후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았다.

어떤 사진보다 선명하게.

운동을 시작한 것도, 살을 뺀 것도, 바다에서 수영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날에서 비롯되었다.

도망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을 벌고 있었다.




최근 오랜만에 오래 앉아 있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았다.

화면에 글자가 차오르는 것을 보며 완전히 빠져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개를 드니 창밖이 어두웠다.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른 초반 도서관에서처럼,

의자에 박힌 채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이불 속에서 눈을 떴는데 허리가 굳어 있었다.

반듯이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천장. 형광등 두 개.

이십 년 전 병원 침대에서 올려다본 천장과 같은 풍경이었다.

잠깐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천천히 옆으로 돌아누웠다.

팔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서 있을 수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오래 쓰지 않던 몸을 갑자기 혹사한 것이다.

원인이 명확하면 대처할 수 있다.




오늘 오후, 절에 다녀왔다.


초읍의 작은 절이었다.

영하 6도. 부산 낮에 영하는 드문 일이다.

추위 때문인지 경내에 사람이 없었다.

법당 안에 혼자 앉았다.

방석을 찾아 깔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불자는 아니지만, 조용한 곳에서 잠시 가만히 있고 싶었다.


부처님에게 말했다.

올해가 내 인생 후반전의 시작이라고. 잘 해보겠다고.

부처님은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았다.

그 침묵이 좋았다.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내 목소리로, 내 입으로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중요했다.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에서 26분을 기다렸다.

바람이 매서웠다. 기다리다 지쳐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서 있는 것보다 따뜻했다.





나는 지금 이 시기를 준비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고장 난 몸을 수리하는 시간.
새로운 쓰임에 맞게 조율하는 시간.


서른 초반, 도서관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이

이십여 년이 지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시험 때문이 아니다. 쓰고 싶은 것이 있어서 앉았다.

열두 시간이 아니라,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다시 앉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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