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기] 01. 다시, '파타야'로.

'처음'이 너무 많았던 날.

이번 여행은 내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혼자 자유여행을 간 건 지난달이 처음이었다.

그때는 베트남 나트랑이었고, 이번은 태국 파타야였다.


파타야는 내 “해외여행의 시작점” 같은 곳이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처음 갔던 여행지이기도 하고,

태국에서 유일하게 가본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곳을 혼자, 그리고 자유여행으로 다시 가게 됐다.


또 하나.

예전에는 일정과 항공편, 숙박까지 친구가 모두 결정했고

나는 결재 후 따라만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공권부터 숙소, 이동, 투어까지

전부 내 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 수화물만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이게 제일 긴장됐다.


숙소도 지금까지 내가 묵어 본 곳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했다.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당연히 붙었다.

게다가 현지 투어를 ‘처음’으로 신청했다.

요컨대 이번 여행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새로 설계하고 있는

인생 후반기의 규칙—정기적 해외여행—을

실제로 처음 실행하는 여행이었다.

작년에 한 번 비슷한 시도에서 실패한 기억도 있어서,

은근히 긴장이 컸다.



출국 3시간 전, 재판이 2개가 잡혔다!!


출발 당일, 출국 3시간 전에 재판이 두 개가 잡혔다.
보통은 한 달 전에 일정이 공지되지만,

내 전문분야에서는 절차의 특성상 가끔 급하게 재판이 잡힐 때가 있다.

심지어 하루 전날에 잡히는 경우도 꽤 있다.

안타깝게도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까딱하면 출국 비행기를 놓칠 위험도 있었지만

내 일정 때문에 재판 시간을 미룰 수는 없었다.

당혹스러웠지만,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실제로 작년엔 갑작스러운 재판일정 때문에

출국시간에 늦었고 항공권과 숙박을 그대로 날린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먹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간다.


그 결심이 만들어낸 해결책이 하나 있었다.

“짐을 미리 공항에 맡겨 두자.”



새벽 4시 53분, 출발은 이미 시작됐다


출발 당일 새벽 4시 53분에 눈을 떴다.

전날까지 여행용 배낭은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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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53분, 기상)

이 사진이 딱 그 순간이었다.

아직 비행기는 멀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이미 ‘출발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반드시 간다”는 결심이 몸을 깨운 느낌이었다.


출근 전에 김해공항에 들렀다.

국제선 공항 안에 있는 짐 보관(물품 보관소)에 가서

하루치 요금을 지불하고 여행 물품을 맡겼다.

사이즈가 스몰이라 1만 원이었다.

다만 거기로 가는 택시비가 2만 원 가까이 나왔다.


그런데… 하고 나니까 좋았다.
이건 단순히 “짐을 맡겼다”가 아니라,

출발 버튼을 눌렀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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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아침, 짐 보관하고 받은 표)



공항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먼저 떠나 있었다


공항 짐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나니,

아직 비행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마음이 먼저 떠나 있었다.

평일 아침의 공항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익숙한 ‘출국 러시’의 공항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는 공항을 좋아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기차역과는 다른 종류의 안정감이 있다.

사람들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어딘가로 떠나고, 또 어디선가 돌아온다.

공항은 누군가의 목적이 실현되는 장소라기보다,

그 목적을 품고 스쳐 지나가는 장소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특히 혼자 떠날 때 그 감정이 더 크다.
이 이유는… 나중에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침식사: 햄버거 하나, 커피 한 잔


짐을 맡긴 뒤, 공항 롯데리아에서 아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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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사무실 가기 전, 아침 햄버거와 커피)


간단한 식사였는데도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그 순간이 “일상에서 여행으로 넘어가는 경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여행을 티 내지 않으려 했던 이유


그날은 연휴 전이었다.

나는 내일까지 일하는 일정이었지만, 사정상 하루를 앞당겨 쉬게 됐다.

(이런 건, 사장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굳이 주변에 “내가 떠난다”는 걸 크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그게 내 스타일이었다.



다시 공항으로: 정장과 겨울옷을 맡기고, 여행복으로 갈아입다


재판을 마치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아침에 맡겨둔 여행 배낭과 옷을 찾고,

대신 오늘 입었던 정장과 겨울 외투를 맡기는 방식이었다.


다만 비용이 예상보다 컸다.

정장/바지: 하루 1만 원 × 5일 = 5만 원

겨울 외투: 하루 4천 원 × 5일 = 2만 원

합계 7만 원, 짐 보관료만으로.


처음 해 보는 방식이라 몰랐고, 그날은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했다.
“처음이라 그랬다. 다음부터는 더 낫게 하면 된다.”

좋은 공부였다.


앞으로 나는 목요일 저녁 출발 + 월요일 새벽 도착 조합으로 여행을 자주 떠날 계획이었다.

항공권이 이 조합에서 유독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그 피로도는 내가 감수해야 했다.



출국 전 의식: 나는 왜 늘 김치찌개가 당길까


생각보다 빠르게 4시 30~40분쯤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 시간이 어중간할 것 같아서 도착하자마자 공항 내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늘 하던 대로—김치찌개를 먹었다.


20260212_162358.jpg 업무 마치고 출국 전, 이른 저녁 김치찌개


이유는 모르겠는데 출국 전에는 늘 김치찌개가 당겼다.

낯선 곳으로 가기 전에 익숙한 맛으로 몸을 정돈하는 느낌일까.

내게는 거의 의식처럼 굳어진 행동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며 공항라운지에 가는 일이 많았다.


라운지 자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내 취향은 솔직히 그쪽이 아니었다.

나는 비행기 타기 전엔 물도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했고(화장실이 싫어서),

떠들썩한 분위기보다 그냥 한식당에서 김치찌개 한 그릇이 더 좋았다.


솔직히 누군가와 여행을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비용을 전부 혹은 대부분 부담하는 역할이

내 쪽으로 쏠릴 때가 많았다.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내 여행인가?” 싶은 순간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여행을 혼자 다니기로 했다.

혼자 다니면 책임도, 비용도, 선택도 전부 내 몫이지만

대신 마음이 단순해졌다.


그래서 앞으로도 출국 전엔 이걸 계속 할 것 같았다.

적어도 내 여행의 시작은 늘 그렇게

뜨거운 국물로 정리될 것 같았다.



티켓을 손에 쥐면, 실감이 난다


셀프 티켓팅을 하고, 위탁 수하물이 없으니 곧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바이오 등록 같은 것도 해 둔 덕분에 생각보다 빨랐다.


Gemini_Generated_Image_6eq2rf6eq2rf6eq2.png 항공권 티켓/탑승권을 손에 쥔 순간

티켓을 손에 쥐는 순간, 마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이제 진짜로 떠나는구나.”
그 실감이 아주 짧게, 아주 정확하게 들어왔다.


Gemini_Generated_Image_6ymnlf6ymnlf6ymn.png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맡기고, 출국 전의 모습

출국수속을 모두 마친 후 검색대를 통과해서

면세점이 있는 출국장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한 번 더 조용해졌다.

“이제는 그냥 가면 된다”는 느낌이 됐다.



기내수화물 공포의 첫 번째 해프닝:

“내 이름이 방송으로 나왔다”


이번 여행의 핵심 긴장 요소는 기내 수화물이었다.

나는 이번에 에어부산이라는 저가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에어부산의 규정은 크기 제한이 있는 가방 2개까지,

합산 10kg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몇 번이나 무게를 재고, 사이즈도 맞춰 두었지만

막상 공항에 오니 왠지 불안했다.


그런데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게이트 앞에서 쉬고 있는데

공항 방송에서 너무 선명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방콕으로 출국하시는 000님, 000님, 0번 게이트 앞으로 와주십시오”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기내수화물만 있는 사람은 따로 검사하나?”
“왜 하필 나만?”
“가방이 커 보였나?”


마음이 다급해져서 가방에서 책 몇 권을 급히 뺐다.

책까지 포함해서 10kg 미만이었지만 혹시몰라서.

옆자리 분께 잠시 책을 맡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땐 진심이었다.


그리고 두근거리며 게이트로 갔더니 승무원이 말하더라.


“비상구 좌석이시죠. 안내 드리려고요.”

…그렇다. 수화물 검사가 아니라 비상구 좌석 안내였다.

그 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컨디션이 좋냐고 묻길래 “너무 좋다”고 웃어 보였다.

그날 수화물 체크는 결국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항상 전수로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띄는 경우에만 보는 날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그날의 나는 괜히 혼자 심장이 한 바퀴 돌았다.


두 번째 해프닝: 왜 다들 그렇게 빨리 타는 거지?


비상구 좌석을 예약해 둔 나는 원래 조금 늦게 타는 편이었다.

좌석이 정해져 있으니 굳이 서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딩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줄을 서는 걸 보면서

나는 천천히 화장실을 다녀오고, 목베개를 꺼내고, 물도 챙겼다.


그런데 갑자기 “곧 게이트 마감” 방송이 나왔다.

보딩 시작 10분도 안 된 시간 같았다. 이상했다.

게이트 쪽을 보니 정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그 이유를 체감했다.

기내수화물 승객이 많았던 항공편이었고, 선반 확보가 전쟁이었다.

내가 마지막에 타니까 내 배낭을 올릴 공간을 찾지 못해

승무원과 한참을 헤맸다.


이건 교훈이었다.

앞으로 기내수화물만 들고 타는 항공편에서는 나도 빨리 타야 했다.

선반은 선착순이었다.


옆자리 ‘신사’와 팔걸이 협상, 그리고 오해가 풀린 순간


나는 저가항공 좌석이 불편한 걸 아니까, 왕복 모두 비상구석을 예약했다.

추가 비용이 들었지만 다리를 뻗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에는 나이 지긋한 신사가 앉아 있었고,

양쪽 팔걸이에 팔을 다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내 좌석 쪽으로 팔이 넘어와 있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6시간을 버텨야 하니 말을 했다.


“팔걸이를 혼자 다 쓰시면 저는 불편합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째려보며 말하더라.


“그렇다면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솔직히 당황했다.

옆사람이 타면 살짝이라도 치우는 시늉을 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팔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저런 말이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6시간 앉아 있어야 하니

둘 다 편하게 갈 방법을 같이 찾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급히 해결책을 냈다.

“그럼 팔걸이 앞쪽은 제가, 뒤쪽은 사장님이 쓰시죠.”


그분은 말없이 팔을 뒤로 옮겼고,

나는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기분이 상한 듯했지만 일단 정리가 됐다.

나 역시도 넉살좋게 말을 꺼내긴 했지만

뭔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 못한 장면이 나왔다.


그분은 기내식을 주문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하지 않았다.

승무원으로부터 받은 기내식을 개봉하다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

“같이 좀 드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거였다. 어색한 표정으로 말이다.


아니. 비행기 기내식을 나눠먹자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이 풀렸다.


아, 이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불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방식이 다른 사람이었고

표현이 투박한 사람이었고 그 나름의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탑승 전 이미 먹었다고, 권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답례를 했다.

그러자 그분은 역시 어색한 표정으로

어디 까지 가느냐, 파타야는 도착해서 더 가야되는데 힘들겠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신 후 혼자 묵묵히 식사를 하셨다.


그 이후 비행 내내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그분도 팔걸이를 조금씩 조절해 주는 게 느껴졌다.


문제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같이 버틸 수 있게 푸는 거라는 걸

아주 작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독서용 라이트를 안 챙긴 날, 하필 폰 액정도 나갔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종이책을 읽는 편이다.

동남아는 밤 비행이 많아서 휴대용 독서 라이트를 챙기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엔 깜빡하고 말았다.


“오후 6시 출발이니까 몇 시간은 밝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 조명이 확 꺼졌다.

마치 “밥 먹었으면 자라”는 신호 같았다.


보통이라면 폰(큰 화면)으로 전자책을 보면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재판 과정에서 폰 액정이 나가 버렸다.

다음 재판 일정을 잡기 위해 폰화면을 열자(내 폰은 갤럭시 z폴드이다)

‘쩍’ 소리와 함께 검은 줄이 생기면서 먹통이 되어버렸다.

수리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기에 일단 그대로 들고 출국을 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갤럭시z폴드의 경우

메인 액정이 고장나더라도 표면의 작은 화면은 작동을 하는데

그렇게 뭔가를 읽는 건 또 뭔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날은 작게 읽다가 피곤하면 엎드려 자고,

다시 깨면 또 조금 읽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교훈은 하나였다.

독서용 라이트는 반드시 챙긴다.

아무리 기내수화물만으로 떠난다 하더라도.



방콕 도착. 그런데 파타야는 아직 멀다


6시간이 흘렀고, 나는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다.

감개무량했다. “혼자서 태국에 오다니.”

여기서 중요한 건 ‘태국’보다 ‘혼자’였다.


하지만 파타야는 공항에서 차로 1시간 30분~2시간을 더 가야 했다.

그래서 픽업 서비스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이것도 혼자 예약하고, 혼자 찾아가고, 혼자 타는 첫 경험이었다.


20260212_220137.jpg 수완나폼 공항 도착 후 이동 통로


20260212_220355.jpg 공항 내부 광고—‘역시 태국에서도 블랙핑크는…’ 싶은 순간

도착하자마자 딱 이런 장면이 보였다.

“아, 여기는 정말 태국이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공항에서 길을 헤매다, 이유 없는 검문을 당하다


예약한 호텔픽업서비스 업체로부터 온 안내 문자를 보고 약속 장소를 찾는데

공항이 워낙 넓어서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헤매다가 어느 구역을 지나가려는데

공항 직원(경찰로 보이는)이 나를 막았다.


이상한 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쪽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출입금지 표지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 막더니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확인 후에야 지나가게 해 줬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생각이 복잡했다.

“내가 뭔가 이상해 보였나?”
“가방이 커서 그런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도 같은 곳에서 막혔고,

그분들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지나가지 말라더라”라고 말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지금도 궁금하다.

왜 그 구역은 어떤 사람은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못 지나갔는지.

정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문제는 아니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픽업 미팅 포인트, 그리고 드디어 차를 탔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 장소를 찾았고, 픽업 차량을 탈 수 있었다.


IMG_2703.JPG 예약해 둔 호텔 픽업서비스 만나는 장소

표지판과 이름표가 빽빽했다.

이 순간이 “내가 정말 혼자 여행하는구나”를 실감하게 했다.

누구도 대신 찾아주지 않고, 대신 물어봐주지 않고,

대신 확인해주지 않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내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밤 11시, 그리고 마치호텔 414호


픽업 차량을 타고 파타야로 이동했다.

현지 시간 밤 11시, 한국 시간 새벽 1시쯤이었다.

나는 원래 일찍 자는 편이라 그 시간엔 졸음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는 편인데,

한 달 동안의 노력으로 얻어낸 여행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컨디션은 괜찮았다.


차는 토요타 작은 세단이었고 운전사는 유쾌한 태국인이었다.

많은 대화를 하진 않았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40분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IMG_2705.JPG 파타야 숙소 도착. 마치호텔 / 414호


예전에 이 도시를 처음 왔을 때는 '하드락호텔'이라는 꽤 좋은 호텔에 묵었다.

당시엔 코로나가 끝난 직후라 그런지 운이 좋게 가격이 낮았었다. 1박당 5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지금은 다르다. 20만원이 넘는다. 아마 정상가가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저렴한 숙소를 택했다. 역시 1박당 5만원 선.


솔직히 이런 가격대 숙소는 처음이라 걱정도 있었다.


체크인을 하니 디파짓을 요구했고(현금으로 처리했다),

추가로 하루를 더 예약했는데 같은 방을 쓸 수 있는지 물었더니

(실수로 예약을 잘못해서 2번에 걸쳐서 했다)

그날 상황을 보고 알려 준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이곳은 “딱 그 가격”이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모텔보다는 조금 낫고, 호텔보다는 못한 그 중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숙소에만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투어 일정도 있고, 무엇보다 향후 정기적으로 떠나려면 이런 선택지도 고려해야 했다.


수영장과 웨이트장이 있다고 들었고,

조식은 아직 확실히 모르겠고(내 경우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위치는 해변과 완전히 붙어 있진 않아 1km정도 걸어야 했다. (이건 나중에 체감했다.)


그날은 짐을 풀고 나니 현지 시간 새벽 1시, 한국 시간 새벽 3시쯤이었다.

흥분 상태였는지 잠이 잘 오지 않아 편의점에서 산 맥주를 반 캔 정도 마셨다.

'레오'맥주. 붉은 색 맥주캔의 '표범'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태국이라는 실감이 조금씩 났다.


그리고 얼마 후

잠이 들었다.


첫날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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