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에는 임차보증금 사건만 들어온다.
월요일에 한 건, 화요일에 두 건, 수요일에 또 한 건.
사건의 내용은 다르고 의뢰인도 다른데, 유형이 같다.
또 어느 주에는 이혼 상담만 이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연은 제각각인데 상담실에 앉는 사람들의 표정이 비슷하다.
어느 주에는 선고 결과가 전부 승소다.
납득이 가는 판결도 있고, 솔직히 의아한 판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주에는 전부 패소한다.
역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섞여 있다.
이 일을 십 년 넘게 하면서 이런 경험을 꽤 많이 했다.
최근에도 그렇다.
설명하기 어렵다.
통계적 우연이라 하기엔 체감의 밀도가 높고,
그렇다고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끌어올 생각은 없다.
사주, 역학, 별자리, 타로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신뢰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하나의 감각은 생긴다.
세상일에는 뭔가 '흐름'이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특정 시기에 특정 유형의 일이 몰려드는 것을 여러 해 동안 겪고 나면,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 흐름은 강하다.
의뢰인이 우리 법인을 찾아오는 것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사건이 어떤 시기에 발생하는지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판결의 방향도 마찬가지다.
변론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결과를 쥐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처음에는 그게 불편했다. 지금은 아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오래 하다 보면 해결보다는 판단에 가깝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이 사건을 맡을 것인가. 이 시점에서 합의를 권할 것인가.
이 의뢰인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질 것인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그 정도다.
이 감각을 설명할 수 있는 경험이 하나 있다.
바다수영이다.
4년 넘게 했다. 거기서 배운 것 중 가장 오래 남은 것이 하나 있다.
파도를 정면으로 뚫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체력에 자신이 있어도, 의욕이 넘쳐도,
파도를 가로질러 힘으로 돌파하려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실력이 좋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력 소모가 크다.
나중에 사고의 위험이 생긴다.
바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돌파보다
끝까지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파도는 부딪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타고 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실력이 안 되면, 지나가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일에도 비슷한 국면이 있다.
패소가 이어지는 주간이 있다.
성가신 상담이 몰리는 시기가 있다.
그때 억지로 흐름을 뒤집으려 하면,
무리한 수임을 하거나,
불필요한 강경 대응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소모된다.
바다에서 파도를 정면으로 뚫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폭우가 치는 날에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결정.
파도가 높으면 해변에서 지켜보겠다는 결정.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 비유가 삶 전체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흐름을 바꾸는 것과 흐름 안에서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후자 쪽에 서 있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