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퍼센트는 없다

그런 대로 괜찮은 쪽으로

이십 대에 좋아했던 소설이 하나 있다.

하루키의 단편이다.


어느 봄날 아침, 한 남자가 도쿄의 뒷골목에서

자신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여자와 스쳐지나간다.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고 멋진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50미터 앞에서부터 확신한다.

저 사람이다, 라고.

남자는 말을 걸고 싶지만 적절한 첫마디를 찾지 못한다.

여자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남자는 나중에야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지 깨닫는다.


이십 대의 나는 이 이야기가 무척 좋았다.


어딘가에 나와 완벽하게 맞는 상대가 있고,

그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한 번쯤은 있었을지 모르고,

하지만 그것을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이상한 의문이 생겼다.


나와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십 년 전과 다르다.

오 년 전에 확신했던 것들이 지금은 흐릿하다.

나조차 파악하지 못한 나와 정확히 맞물리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그건 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삶이 통째로 불행해지지도 않았다.

삶을 살아보니 그 정도는 알게 되었다.


특정한 선택 하나가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

그건 이십 대의 문법이었다.

방향이 바뀌는 일은 있다.

하지만 한 번의 선택이 나머지 전부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슬프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슬프지 않다.



요즘은 다른 것에 마음이 간다.


퇴근길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이문세의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랑을 언제쯤 다 알 수 있을지,

세상을 언제쯤 다 알 수 있을지 묻는 노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냐고도 묻는다.

한때 설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추고 듣는데,

후반부에서 손이 볼륨 쪽으로 갔다.


노래 속 목소리는 옛사랑을 떠올리면서도

충분히 사랑했기 때문에 이대로 괜찮다고 말한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고.

그리고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다고.

노래는 거기서 끝난다.


하루키의 단편에는 놓친 것에 대한 아련함이 있다.

이 노래에는 놓친 뒤에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태도가 있다.

이십 대에는 전자가 가슴에 와닿았고,

지금은 후자 쪽에 서 있다.



이것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소설 속 남자는 스쳐지나간 여자를 평생 후회할 것처럼 보인다.

그 후회 자체가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걸 안다.

문학은 그런 것이니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여전히 좋다.

그 소설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제의 삶을 생각할 때는 다르다.

놓친 것들이 있다.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날이 남아 있다.


내 삶은 그런 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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