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두 시 십분
책상 위 메모지의 맨 위쪽이 모서리가 말려 있었다.
며칠 전에 놓인 것이다.
연휴로 며칠을 통째로 비운 사이,
상담 요청과 회신 목록과 기일들이 쌓여 있었다.
하나씩 넘기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주 수요일, 새벽 네 시 반에 눈이 떠졌다.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누워 있어봐야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나왔다.
사무실까지 이십 분.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불을 켜고 앉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전화기도 울리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서류를 열었다.
하나 끝내고, 다음 걸 열고, 또 끝내고.
두 시간쯤 지나 창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나온 새벽이었는데, 그 고요함이 편안했다.
밀린 일은 며칠이면 줄었다. 시간을 들이면 됐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줄지 않았다.
목요일 오전, 상담 중에 상대방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주 통화에서 분명히 설명한 내용이었다.
차분하게 다시 말씀드렸고, 곧 수긍했다.
통화는 삼 분 만에 끝났다. 별일 아니었다.
그런데 전화를 내려놓은 뒤에도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
호흡이 짧았다.
일을 못 처리한 게 아니었다. 처리는 했다.
상황이 발생하는 그 순간 자체가 몸을 먼저 건드리고 있었다.
그날은 오후가 유난히 길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특별히 나쁜 통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했다. 왜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빈 문서를 열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시간을 먼저 적었다.
두세 줄을 치고 나니, 답답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이 나와 약간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답답한 게 아니라,
'답답함'이 저기 화면 위에 놓여 있고,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그 뒤로 같은 방식을 반복했다.
전화가 끝나면 적었다. 상담이 끝나면 적었다.
몇 시, 무슨 일, 지금 내 상태. 그것만 적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것을 글자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나를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되었다.
오늘도 빈 창을 하나 열었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