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습작] 서른두 번

어느 변호사의 목요일

여름이었다. 팔월의 목요일.

전날 밤 네 시간 정도 잤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수첩에 하루 일정을 적기 시작했다.

열한시 상담. 한시 상담. 세시 상담. 네시 상담.

한 줄씩 적어 내려갈 때까지는 괜찮았다.

글자들은 가지런했고, 여백은 충분했다.

그런데 열한시 칸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손이 멈추었다.

문서위조 사건이었다.

지인이 소개한 의뢰인인데, 어떤 사람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수첩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건물의 옥상에 실외기 네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네 대 모두 돌아가고 있었다. 팔월이니까.


잠이 부족하면 귀가 멍멍해지는 체질이었는데,

그날 아침에도 세상이 얇은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열시쯤 직원이 메모를 가져왔다.


진행 중인 사건의 의뢰인이 불안해한다고 했다.

변호사와 통화를 한 번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메모를 받아들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책상 위에 수첩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메모지가 놓였다.


전화를 걸었다.


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의뢰인의 목소리는 통화가 끝날 무렵 처음보다 반 톤쯤 낮아져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접수를 지시하고, 단톡방 개설을 시켰다.


다른 사건의 국선 변호인에게도 전화를 걸어야 했다.

받지 않았다.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두었다.

이미 세 장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네 장이 되었다.




열한시. 의뢰인이 왔다.


문서위조로 기소된 사람이었다.

이건 비밀이지만, 이 사람을 소개해 준 지인은 그를 두고

똑똑한 척하지만 허당이라고 했는데,

만나보니 대략 그런 사람이었다.

눈이 초롱초롱했고, 말이 잘 통했다.

함께 온 동생이라는 사람도 나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자녀 때문인지, 노후를 위해서인지.

그것을 위해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서류를 넘기면서 그의 손을 보았다.

크고 두꺼운 손이었다. 손톱이 짧게 깎여 있었다.

그 손으로 서류를 위조하고 거기에 가짜 서명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담을 녹음하려고 했다.

휴대전화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보니 눌리지 않았다.

한 시간의 상담이 아무 기록 없이 끝났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부분은 손수 메모를 했고

전체적인 부분은 대충 기억 하고 있으니까.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혼자 사무실 안쪽 방에서 대충 먹었다.


사무장과 잠시 이야기를 좀 했다.

최근 근무태도가 좋지 않은 한 직원에 대해서였다.

문을 닫아놓고 몇 가지 지시를 했는데

밖으로 나왔는데, 그 직원이 이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서 있었다.

우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커피를 타는 척하면서 탕비실로 들어갔다.


머리가 아팠다. 잠이 부족하면 점심 이후에 반드시 이렇게 되었다.



오후 한시. 부동산 상담.


어떤 복지재단에서 왔다.

기부를 받아 건물을 지었는데 등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사건이었다.

본사와 지사의 법적 지위가 달랐고, 기본재산 해당 여부도 불분명했다.

솔직히 잘 모르는 분야였다.

하지만 질문을 하나씩 쪼개어 듣고,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답하고, 모르는 부분은 관할 관청에 확인하라고 권했다.


공적인 일이었다. 고생하는 분들이었다.

상담료는 받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간 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에어컨 소리와 복도에서 누군가 걸어가는 발소리.

나는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숨쉬기가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십이 분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오후 두시.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해결해야 했다.

설정을 바꾸고 테스트해보니 작동했다.

어댑터가 필요해서 두 개 주문했다.

실적을 채워야 하는 카드가 있었는데 다른 카드로 결제해버렸다.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의뢰인 자료를 정리했다.

사진을 A4 용지에 붙여 스캔하려 했는데,

종이가 두꺼워서 기계가 빨아들이지 못했다.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성공했다.


새로운 지급명령서가 들어왔다.

신입 직원이 보정서류를 곧바로 처리해놓았다.





오후 네시. 횡령 사건 상담.

사안은 복잡했지만 내용을 정리해서 동료 변호사에게 넘기면 되는 일이었다.

1시간 가까이 상담을 마친 후 자리에 앉아 내용을 정리했다.


그 사이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섯시에 퇴근하라고.

나는 화면을 보다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오후 다섯시 십분.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그날 내가 얼마나 많은 결정을 내렸는지를 문득 생각했다.

아침에 수첩을 펼친 순간부터 지금 이 엘리베이터의 하행 버튼을 누르기까지.

전화를 걸 것인가 말 것인가.

상담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카드를 취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녹음 버튼을 눌렀는가 누르지 않았는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서른 번은 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른두 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오자 팔월의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습하고 무거운 공기. 귀가 여전히 멍멍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아까 의뢰인의 손을 떠올렸다.

크고 두꺼운 손. 짧게 깎인 손톱.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나왔다.

나는 그것이 얼굴에 닿는 감촉을 한동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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