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가 나오지 않던 사무실

그때의 나에게 (1)

사무실을 열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사무장이 처음 출근했다.

이 사무장과도 별로 좋지 않게 헤어졌지만... 뭐 하여튼

개소식에 와주신 분들의 화환이 아직 시들지 않았을 무렵이다.




나는 그날 아침 사무실 문을 열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이걸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오래 다니던 곳을 나와

간판을 달고, 명함을 찍고, 사람을 뽑았는데도.


서면을 잘 쓰고 재판을 잘 하면 된다.

그게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실제로 그것이 이 일의 본질이기도 하다.

나는 그 본질에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사무실을 여는 데 큰 망설임이 없었다.



생활은 빠르게 달라졌다.

그 전까지 나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됐다.

은행에 다닐 때도 그랬고, 법무법인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하는 건 기본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이 내 몫이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흐려졌고,

공휴일과 평일의 경계도 사라졌다.

할 일이 많으니 마음이 늘 초조했다.

사무실 정리는 개인적인 일이었고,

그것 때문에 의뢰인의 사건이 늦어져서는 안 됐다.

시간을 쪼개고 잠을 줄였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 일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라는 것을.

학교에서도, 판례에서도, 누구도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어딘가에 짧은 글을 올렸다.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 같은 곳이었다.





의뢰인들께서 당하신 억울한 일을 해결하시는 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언제나 의뢰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지금 읽으면 낯이 간지럽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 앞에서 비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런 말을 진심으로 적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조금 대견하다.




그로부터 십 년도 더 훨씬 지났다.


사업은 본업의 능력만으로는 굴러가지 않았다.

한번은 여직원이 사무실에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시공사에 확인해 보니 건물이 오래되어 온수관 자체가 없단다.

그런 것들이었다.


서면을 아무리 잘 써도 해결되지 않는 종류의 일들.

그런 것들이 매일 쌓였다.

대상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피곤한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사무실을 운영하는 동안은 쭉 그럴 것이다.

감수하는 수밖에.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그 사무실은 이제 없다.


온수도 나오지 않던 그 낡은 건물은

아마 지금도 그 자리에 있겠지만,

내가 간판을 달았던 그 사무실은 없다.


이런저런 변화를 거쳐

지금은 전혀 다른 형태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뭘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온수관이 없는 건물에서 사무실을 열게 될 줄 알았더라면,

체력이 실력보다 중요한 일인 줄 알았더라면,

아마 한참을 더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움직였다.

그리고 그 풋풋한 문장을 어딘가에 남겼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문장이 내게 돌아왔다.




수고했다. 그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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